[탈북자 수기 연재]

필자는 전 국가안전보위부 24국에서 외화벌이 담당 책임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김정일 독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2004년 자유를 찾아 탈북 하였다. 자유와 민주, 인권이 보장되고 있는 남한에 와서 필자의 탈북 결심이 백번 옳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3 기회는 사람을 만든다.

내가 담당한 서부지구는 평양시를 중심으로 평안남북도와 황해남북도, 자강도가 포함된다. 옹진, 해주, 사리원과 또 여기서 외화로 바꿀 수 있는 원천들은 농수산물을 비롯하여 사금과 유색금속들이다. 이것들을 원천 채취하여 일본이나 중국에 팔아 외화를 벌어들인다.

내가 수행한 첫 업무는 담당지구에 대한 요해 및 검열 사업이었다. 그런데 검열과정에 제일 심하게 걸린 사람이 평안남도의 온천군에 있는 수산기지 기지장이였다. 그는 자기 힘으로 수산 기지를 내오고 조개와 새우, 광어, 실뱀장어 등을 잡아서 수출을 하였다. 그런데 적자가 많이 나 있었고 계획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검열을 진행하는 며칠 동안 온천 기지장은 얼굴이 거멓게 돼 애절한 눈빛으로 처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식대로라면 적자난 사실만으로도 그 기지장은 두말할 것 없이 철직되고도 남을 일이였다.

그러나 나는 사람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기지장의 사람됨부터 파악했다. 그는 자기 돈으로 500톤급 배도 마련하고 원천 자금도 마련해서 필사적으로 노력 했지만 간부들이 요구하는 뇌물을 충당하기도 아름찼다.

간부들은 받아먹을 때뿐이지 정작 문제가 제기되면 나 몰라라 하고 발뺌을 한다. 수차례 상급이 바뀌는 바람에 온천 기지장의 잘못된 뇌물작전은 오히려 적자만을 낳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긴 그 체제에서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런데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어지자 그를 처벌하려는 것이다. 검열조사를 마치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본부로 돌아와 나의 의견을 상급에 보고하였다.

“그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어 1년을 지켜보자, 그다음 처벌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는 국가안전보위부를 위해 자기의 전 재산 그리고 친척들의 돈까지 들이 밀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처벌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나는 상급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급의 동의를 얻어 다시 온천으로 내려갔다. 나의 말을 전해들은 기지장은 몇 번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24국의 원천물자인 밀가루와 사탕가루를 각각 20톤씩 온천 기지장에게 대여해 주었다.

온천 기지장은 정말 밤잠도 안자고 배에서 살다시피 하며 일을 하였다. 나는 자주 내려가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도 하고 애로 되는 문제도 해결해주었으며 남포항에 냉동 창고도 마련해 주었다.

1년 후 온천 기지에서는 계획은 물론 3만 달러나 더 벌어 들였다. 온천기지장은 당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결국 한 번의 기회가 사람을 만든 것이다. 이때 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담당한 서부지구의 각 기지들에서 계획을 수행하고 돈이 많이 벌어지자 이를 질투하여 나를 시기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윗선으로 나에 대한 신소장이 들어갔고 나도 모르게 내 뒷조사를 시작했다.

원래 북한은 일을 시켜 놓고 뒷다리를 잡아당기는 것이 특징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먼지 털어 안 걸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도 곧 검은 구름이 밀려왔다.

탈북자 오상민

 

자유북한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