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벌써 몇 년째 추운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봄이 가면 여름 오고 여름 가면 가을, 겨울이 자연의 현상으로 찾아오는데 언제부터 나에게는 아름다운 자연을 느껴 볼 여유는 물론 또 하나의 걱정이 추가되는 무서운 겨울이다.

온난화가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온 세계가 아우성치는데 누가 뭐라고 해도 땔 걱정이나마 덜 수 있게 나는 오히려 ‘초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랄까?

‘겨울’하면 눈사람 만들어놓고 썰매를 타고 집집마다 처마가 보이지 않게 까맣게 동태를 걸어놓고 연탄불에 구어 먹던 추억이 있지만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현실이 고달프면 자연히 옛날이 그리워지는 걸까?

차라리 노래라면 듣기나 좋으련만 끝날 줄 모르는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들을수록 지겹기만 하다. 실제로 ‘고난의 행군’은 1930년대 말쯤 항일운동 때 일이라는 데 지금의 ‘고난의 행군’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때처럼 적군의 총에 맞아 죽는 것도 아닌데 굶어죽고 얼어 죽고 내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자꾸 배고파 굶어 죽어간다.

아빠엄마가 직장에 출근해서 배급표와 로임을 타오고 아이들은 아침마다 교복입고 학교에 가고 하얀 위생복을 입은 의사선생들이 예방접종을 나오고 하던 때는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물론 그때도 방송이나 TV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 부럼 없이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하루 세끼 굶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만 뜨면 세대주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생계를 걱정하고 모여 앉으면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걱정한다.

“살기 위해서 먹나? 먹기 위해서 사는가”하는 별 의미 없는 말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생식으로도 먹을 수 있는 ‘속도전가루’가 가장 인기 높고 옛날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이론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갈수록 심산이라더니 날이 갈수록 이 나라가 심상치 않다.

너덜너덜한 가마니짝을 펴놓고 극성스런 모기떼를 쫒으며 며칠씩 차례를 기다리던 배급소도 이제는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어졌다.

집집마다 한두 해를 넘긴 미공급량이 천문학적 숫자를 웃도는데 밀린 배급을 다 줄 수 있나없나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동네 아줌마들의 불안감은 배급표가 유효하지 않는다는 현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행여나 밀린 배급을 한꺼번에 타게 되면? 하고 마음속으로 달걀낟가리 쌓기를 반복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배급표를 미련 없이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배고파 쓰러지고 전염병에 쓰러지고 거기다가 사방에서 울리는 공포의 총소리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사람들은 해가 거듭하면서 어느새 무의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렇듯 힘든 상황에서도 독재에 길들여진 이 나라 사람들은 반항을 모른다.

가족과 이웃이 억울하게 죽어가도 운명처럼 순종했고 모든 책임을 언제나와 같이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상습 사기꾼들의 말을 듣고만 있고 아직도 미래를 낙관하는 미련한 사람들도 있다.

가난구제는 임금도 못한다고 했던가? 천사 같은 인민들이 하늘같이 받들던 어버이마저도 속수무책이다.

갈수록 더해가는 생활고에 국정가격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서 선량함과 양심, 도덕은 바랄 수 없다.

양육강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사람들은 생존과의 투쟁에서 스스로가 약한 자와 강자로 변해가고 부정부패는 이미 양심을 괴롭히는 일이 아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세월에 무슨놈의 회의는 그리도 많은지 판에 박힌 비서동지의 ‘연설’시간에 사람들은 밀린 잠을 보충하며 말뚝잠을 잤다.

엄숙하다 못해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어내며 열을 올리던 생활총화시간도 그전 같지 않다.

모든 것이 형식에 불과했고 뒤죽박죽이었다.

오직 황금만이 자기의 능력을 발휘했고 위력을 과시했다.

그렇게 위대하고 강하다는 쏘련과 동구라파의 사회주의 나라들이 연이어 미국에 추종해서 망했다고 하더니 인제는 이웃나라 중국마저 자본주의 길로 간다고 ‘배신자’라고 떠든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인민의 어버이도 위대하다는 당도 믿지 않게 되었지만 다만 처벌이 두려워 뒤에서만 쉬쉬하고 있었다.

참으로 흉흉한 세월이다.

북서풍을 타고 오는 지, 남서풍을 타고 오는 지 날에 날마다 들리는 소문도 흉흉하고 각박한 세월만큼이나 사나워진 사람들의 얼굴도 딩딩하다.

모든 것이 허울 좋은 간판뿐이다.

TV나 방송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수령 찬양가요가 흘러나오고 세금 없는 나라요, 무상치료요, 무상교육을 떠들지만 더 이상 내가 사는 내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지상낙원은 아니라는 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볼 필요가 없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내 친정과 시댁만 봐도 당과 수령을 위해 13년이나 군사복무를 하고 돌아 온 남편과 동생이 이름뿐인 대기업의 실업자가 되어 길가에 나앉았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혁명가라는 분에 넘치는 칭호에 어울리지 않게 큰 시누이는 아예 장마당도 아닌 동네에서 학부형을 상대로 국수장사를 하고 있다.

버스 사업소의 기사로 근무하는 시동생은 국가의 버스로 개인 장사를 공공연히 하고 있어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단다.

그 와중에도 큰 대학병원에서 경리업무를 보는 작은 시누이가 쌀 구경을 하고 살지만 제 집식구 3명이 겨우 살아가는 형편이라 형제조차 돌봐줄 형편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장마당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된 사람들은 말 그대로 팔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고 나왔다.

전기사정도 어려워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리에 눕는다.

끼니때가 되어도 집집의 굴뚝은 감감 무소식이고 어느 집에서 무엇을 끓여 먹는 지 귀신처럼 냄새를 맡는다.

어른은 어른이라 체면이 있어도 아이들은 사정이 없다.

남조선에만 거지가 있다고? 천만에!
차마 거지라고 부르지는 못하고 이름도 희귀한 꽃제비가 등장했다.

기차역이 가까운 철다리 밑에는 열차방통에서 연탄부스러기를 주어 빵 한조각과 바꾸어 먹는 애들은 흡사 흑인과 똑 같은 모습이다.

매매하는 물건에는 개인의 것도 나라의 따로 없다.

없는 사람은 쌀독을 들고 나와 빵 한조각과 바꾸고 있는 놈은 작은 집을 웃돈을 주고 큰집으로 버젓이 이사했다.

여느 때 같으면 엄명을 들씌워 감옥으로 갔으련만 권력을 가진 자도 배고픈 세상인지라 돈을 꿀꺽하고는 눈을 감아줬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체면 따위는 다 버리고 살기 위해 나섰지만 그 체면마저도 귀중히 여긴 많은 사람들은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이름 있는 과학자면 무엇하고 영웅이면 무엇 하리!

하지만 이 나라가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하고 있을 런지 알 수 없다.

미국과 남조선 아니면 엄청 잘 살수 있단다.

유럽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소년처럼 이 나라 수령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이제 더 이상 능력 없는 당과 수령은 인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대신 반항하는 자도 아닌 배가 고파 쌀을 훔쳐 먹은 사람을 향해 총을 쏜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공개총살’ 현장을 만들어놓고 ‘시범’을 보인다며 총을 쏜다.

우리의 원쑤는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하며 총 쏘는 법을 가르치더니‘원쑤’도 아닌 불쌍한 인민에게 총을 쏜다.

오후 5시가 되기 바쁘게 어두워지는 겨울에 공개총살현장 옆을 지날 때면 공포 그 자체다.

점점 힘들고 지쳐가는 데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끝이 안 보인다.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 생존을 위한 일상을 가리켜 사람들은 ‘생활전선’이라고 부른다.

이 땅의 평화로운 모든 것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살아남기 위해 악을 쓰고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머나먼 겨울은 언제나 끝날까?
만물이 소생하고 산에 피는 진달래가 생각나는 따뜻한 봄이 그리워진다.

2011년 5월 23일 전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