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가지 인신매매와 성 착취의 역사

-The University of Sheffield: Markus.B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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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지역 국가 사이의 관계를 괴롭히는 많은 역사적 문제 중,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문제 때문에 관계회복에 대한 희망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이 문제는 국제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동북아시아의 체계화된 여성 성 착취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최근의 희생자들은 조국을 떠나온 탈북 여성들이다. 일단 중국에 도착하면 탈북민들은 보호를 받을 수도 없고 그들이 받는 처우에 대해 어떤 법적 대응도 할 수 없다.

 

합법적으로 거주하거나 일을 할 수 없는 탈북민들은 중국 경찰에 의해 강제 북송 당하기 쉬울 뿐 아니라 법의 태두리 밖에서 활동하는 인신매매 범들의 쉬운 희생양이기도 하다.

 

탈북여성들은 인신매매를 통해 상품 취급당하며 매매된다. 그들은 중국 남성들에게 신부로 팔리거나 탈북 과정에서 지게 된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성 매매를 하도록 강요당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탈북 여성들은 고통 받는 위안부 여성들의 후계자인 셈이다.

 

동북 아시아의 성 노예 역사의 뿌리

 

현재 계속되는 인도주의적 위기의 뿌리는 20세기 초반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와 제2차 대전 당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여성들을 대부분 강압적인 방법으로 혹은 속여서 대량으로 모집해 일본군 휴게실에서위안부” 여성으로 일하게 한 것에 있다.

 

이들 여성 중 상당수는 만주에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일본군 휴게실에서 일본 군인들을 상대로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한 상황 속에서 일을 했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로 미국은 아시아지역 내에서 제국 건설자 역할을 이어받았다.

 

일본처럼 미국도 한국, 일본, , 필리핀 등지에 군부대를 주둔시켰다. 미군 부대 주위에는 작은 가게들과 술집, 유흥업소들이 즐비하고 먼 고향을 떠나 온 군인들을 상대로 한 성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기지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지촌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은 이전 일제에 의해 고생을 한 여성들이었다.

 

1945, 많은 한국의위안부 여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은 그들 자신과 조국을 배반한 친일파라고 외면당했다.

 

그 결과 이들 여성 중 일부는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일을 다시 하게 되었다: 몸을 파는 일 말이다.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이 심해져 가면서 박정희 정권은 한국의 기지촌 성 매매 여성들이 미군의 휴식과 회복에 도움을 주는 친선대사역할을 하며 그러므로 미국 달러 유입을 보장해 준다며 기지촌 성 매매를 장려했다.

 

그녀들에게 합법적인 일자리를 약속하는 폭력배들과주선 업자들의 관리를 받는 기지촌의 성 매매 여성들의사적인 외교의 도움을 일부 받아 얻게 된 미국 자본은 서울의 산업화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근대화를 이루려는 정부의 장려로 시골에서 수많은 어린 여성들이 상경해 공장에 자리를 잡고 수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냈다.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들은 기지촌의 술집에서 일을 했다.

 

이렇게 한쪽 성별로 치우친 시골에서 서울로의 대 이동의 직접적인 결과로 시골에서는 젊은 미혼의 여성이 점점 사라져 갔다. 한국의 시골은 박정희의 근대화 정책에 의해 희생당했고 점점 늘어나는 시골의 미혼남성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미혼의 한국남성들이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가서 신붓감을 찾을 수 있게결혼 관광을 지원했다.

 

 

1980년대 대부분과 1990년대 초반 규제 받지 않는 결혼 관광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시골 지역의 한국 미혼 남성들은 계속해서 조선족으로 알려진 중국에 사는 한국계 여성들을 부인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더 많은 조선족 여성들이 새 신랑을 따라 한국으로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양쪽모두에게 어떤진실이 명확해졌다.

 

조선족여성들은 광고에 나온 것만큼 순종적이거나전통적인 여성들이 아니었고 한국 남성들은 현대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화려함과 현란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지 않았다.

 

한중 관계가 개선되면서 한국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성들에 대한 규제도 점차 완화되었다. 그 결과 한국 미혼 남성들이 논에서 그들과 함께 힘든 일을 할 한국계 중국 신부들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점점 한국계 중국인 여성들(조선족 여성들)을 찾기 힘들어지면서 한국의 남성들은 더 멀리 나가서 기존 그들이 상상했던 신붓감의 출신 및 민족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중국 동북부 지역의 인구가 더 잘살게 되고 이동이 더 자유로워지면서 약 30년 전에 한국 여성들이 그랬듯이 조선족 여성들도 시골에 머무르는 걸 더 꺼려하게 됐다.그 결과 그 쪽 지역의 미혼 여성의 부족이 더 극명해졌다.

 

중국 동북부 지역의 남성들은 이제 한 세대전의 한국 남성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할 땅과 부양해야 할 나이들 부모님은 있는데 그들의 땅을 물려줄 자식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신붓감을 찾아야 했다.

 

이 경우 그들의 신붓감 부족 상태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탈출해 일자리와 음식을 찾아 중국에 불법으로 건너온 탈북 여성들로 해결되고 있다.

 

대부분이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인 탈북 여성들은 일단 중국에 들어오면 여러 가지 문제에 취약한 상태다. 한국에서 그러 했듯이 중국에서의 신붓감 시장은 규제 받지 않고 있다.

 

그들이 다루는 개개인의 인권보다는 이익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한 조선족과 중국인 중개인들이 이러한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탈북 여성들은 중국의 동북부 지역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 걸쳐서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여성들이 중국인 남성들에게 신붓감으로 팔려나가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지역의 성 매매 산업으로 흘러 들어간다.

 

인신매매를 당하는 여성들 중 좀 더운이 좋은여성들은 주로 한국에 있는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여 한국으로 간다. 하지만 60년 전위안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더럽고 순수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미심쩍은 동기로 몸과 도덕심을 팔았다고 비난 받을 까 두려워 침묵을 지킨다.

 

동북아시아에서 인신매매와 성 착취는 애국주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성()의 문제다. 일본 군인들을 상대했던 여성들과 한국의경제 성장의 기적에 기여한 미국달러를 벌기 위해 그들의 몸을 준 여성들, 그리고 중국인들과 억지로 결혼한 탈북 여성들에 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는 그 뿌리가 제국 건설과 근대화에 있다.

 

이 모든 여성들의 경우에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울부짖음보다 돈이 더 큰 목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