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공동합의문의 성과와 의미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김열수(성신여대 국제정치학 전공 교수)

 

8 25일 새벽 2, 국민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TV앞에 앉았다. 남북한 최고위급 회담의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되었다. 혹시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이번에는 확실한 사과를 받아낼 것이라는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사실 이번 회담은 전쟁과 대화의 갈림길이기도 했다.

 

43시간의 긴 협상 끝에 6개항의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북한유감이 제2항에, 그리고 사실상의 재발방지가 제3항에 명시되었다.

 

북한은 70년 분단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도발을 해왔다. 6.25남침은 물론이고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196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1976), 북한 잠수함 동해 침투사건(2006), 2차 연평해전(2002) 등 딱 4차례뿐이었다. 그것도 구두로 전달하거나 방송 또는 전통문을 통한 것이었다.

 

이번 합의문의 제2항이 과거와 다른 점은 유감이라는 용어와 유감 표명의 주체가 북한이라는 것이 남북 최고위급 4명이 합의한 문서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영원히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전쟁에 패배했을 경우를 제외하곤 사과(apology)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유감(regret)이라는 표현이 사과를 대신한다는 것이 외교가의 정설이다. 따라서 북한이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실상 사과를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3항은 남북한 간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발생하면 북한이 그렇게 꺼려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는 내용이다. 일종의 단서 조항이다.

 

비정상적 상태란 국지도발 등 북한이 정전협정을 준수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의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한테 불리한 제2항과 제3항이 어떻게 공동합의문에 명시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목함지뢰 도발과 포격 도발이라는 북한의 전략전술적 실수가 컸다. 북한은 도발 시기를 잘못 선택했고 한국의 대응수단을 잘못 판단했다. 북한은 한미간의 연례적인 연습인 UFG기간에, 그리고 중국이 全세계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항일 및 反파시스트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기념일이 며칠 남지 않은 기간에 도발을 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마저 북한을 압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한은 한국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몰랐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시에도 한국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지 않았기때문이었다. 여기에다 호전광(好戰狂)의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는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48시간이라는 시간을 한정함으로써 북한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으로선최고존엄을 훼손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결국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실수보다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한국 정부의 원칙 있는 대응 및 국민의 단결된 뜨거운 성원 덕분이었다.

 

정부는 도발-협상-보상이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보상이라는 카드로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잘못한 것에 대해 서는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는 인류의 보편적 규범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칙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정부의 원칙적인 대응과 함께 국민의 성원도 과거와 달랐다.

 

접경지역 주민들조차도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고 국민들도협상 결렬이 두려워 서둘러 양보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30대 예비군들은 예비군 동원에 대비해 복장을 챙기고 있었고 전역을 명받은 20대 장병들도 전역 연기를 신청하였다.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유엔사 군사정전위 장성급 회담마저 거부했던 북한은 한국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먼저 고위급 접촉을 제의하였고, 서둘러 2+2회담에 임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제2항과 제3항을 두고 자중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합의문이 남북간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한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는 큰 생각을 가지고 합의문을 충실히 지키기를 바란다. 돌아서서 딴 궁리를 하면 우리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