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화교 유가강, 간첩 된 이유가...

 

- 탈북자 정보 유출 혐의로 기소천당과 지옥 넘나든 비운의 삶 -

 

 

 

북한에서 화교유가강으로 태어났다. 일부 지인들은 그를유광일이라 부르기도 했다. 북한식 이름이었다. 10년 전 남한에 넘어왔을 때, 그는 자신을유가강이라 소개하지 않았다. 재북 화교가 아닌 탈북자로 받아들여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유광일로 살았다. 곧 세 번째 이름을 얻었다. ‘유우성’. 남한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한 개명(改名)이었다.

 

이름은 곧 정체성을 대변한다. 그의 이름은 세 개나 된다. 스스로 겪은 삶의 굴곡이 남긴 흔적이다. ‘유가강은 중국인 화교였다. ‘유광일은 북한 이탈 주민이었다. ‘유우성은 한때 서울시 공무원이었다. 지난해 1월 그 이름 위에간첩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힌다. 그가 탈북자 정보를 유출해 대한민국의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유가강’에서유광일’, 다시유광일에서유우성까지. 공안 당국이 간첩으로 지목한 재북 화교 출신의 한 사내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검찰, 어머니 장례 계기로공작원포섭 주장

 

 

fnk_62106_75588_226.jpg

 

유우성씨는 1980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화교로 이미 4대 전에 북한에 정착한 집안에서 자랐다. 2001년 함경북도 경성에 있는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업을 마친 후 회령에서 준의사(의사 보조역)로 근무했다.

 

노임과 배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북한 사회의 경제난 때문이다. 살길이 막막했다. 호구지책을 찾아야 했다. 유씨는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밀수꾼을 통해 북한 물자를 거래하는 밀무역에 나섰다. 남한 거주 탈북자들과 북한 거주 가족 간에 통화 및 송금을 주선하는 일까지 했다. 의사와 장사꾼 사이에서 사명감이 흔들렸다. 북한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남한을 동경했다.

 

결국 2004 3월 북한을 떠났다. 중국 여권으로 중국·라오스·태국을 거쳐 남한에 들어왔다. 유씨는 자신이 중국 국적을 지닌 화교라는 사실을 숨겼다. 자신을 북한 이탈 주민유광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북한 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대상자가 됐다. 한국 국적을 얻었고, 북한 이탈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하나원 등에서 각종 교육을 마쳤다. 2004 3월 대전에 처음 정착했다. 복권방 종업원, 건설 노동자, 보따리상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2007년 서울 소재의 한 대학 3학년에 편입했다. 대학 생활 동안 학내·외 탈북자 관련 동아리·단체 등에서 활동했다. 2010년에는 이름을 유우성으로 바꿨다. 2011년 대학 졸업 후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그렇게북한 이탈 주민 유광일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으로서의 새 삶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2013 1월 유우성씨는 전격 구속된다.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의해서다. 유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포섭돼 탈북자 명단 등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것이 주요 혐의였다. 이어 검찰은 유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북한 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여권법 위반 등 8개 죄목으로 기소했다.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던 유씨가 하루아침에간첩이 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왜 유씨가 간첩이라고 판단했을까.

 

시간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씨가 북한에 들어갔던 때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중국 옌지(延吉)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 통행증을 발급받아 북한 회령에 다녀왔다. 여기까지는 유우성씨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어머니 장례를 위해 입북했던 것은 2009년 국정원에서 이미 조사를 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공안 당국은 장례 이후 유씨의 행적에 대해 새로운 혐의를 꺼내들었다. 북에 있는 가족이 걱정된 유씨가 다시 입북했다가 회령 보위부에 체포됐고, 이때 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됐다는 것이다. 7일 동안 한국 정착 상황 등에 대한 조사를 받고 석방된 후, 3일에 걸친 대남 사업 교육 및 정신 교육 후 공작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을 드나드는 한편, 여동생을 통해 탈북자 관련 정보를 유출해왔다는 것이다.

 

 

1심에서 깨진여동생 증언증거능력

 

 

fnk_62106_75589_2215.jpg

 

 

유씨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후에는 중국 옌지·창춘·베이징 등에서 친지를 방문하고 여자친구를 만나는 등 시간을 보내다 남한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정보를 유출한 적도 없고, 어머니 장례 이후에는 북한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맞섰다. 국정원은 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확보한 증거 때문이다. 바로 유씨 여동생의 증언이었다.

 

유우성씨의 여동생 유가려씨는 2012 10월 입국했다. 오빠가 했던 것처럼, 그도 자신의 화교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 했다. ‘탈북자로 보호 신청을 했다. 국정원은 유가려씨를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센터)에 수용했다. 조사가 시작됐다. 이때 여동생 유씨는, 오빠 유우성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이었다는 사실을 매우 구체적인 정황과 함께 진술한다. 검찰 기소의 핵심 증거였다.

 

그런데 여동생 유씨는 2013 4월 피고 측 공동변호인단의 인신구제청구를 통해 센터에서 나오게 된 후 자신의 증언을 뒤집었다. 국정원의 강압과 회유에 의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진행된 1심 공판에서는 혐의의 직접 증거인 여동생 유가려씨 진술의 신빙성 여부가 관건이 됐다. 피고인 유우성씨의 공소 내용이 대부분 유가려씨의 진술을 근거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오빠 유씨가 중국 옌지에 있는 유가려씨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탈북자의 신원 정보가 담긴 파일을 전송하고, 유가려씨가 두만강을 도강해 이것을 북한 보위부에 전달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유가려씨의 진술 내용을 두고 상식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동생으로서 친오빠의 간첩 혐의를 증언하는 진술을 할 동기가 뚜렷이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 유우성씨의 공동변호인단은 유가려씨가 센터의 국정원 파견 직원으로부터 강압 및 회유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센터에서 나온 뒤 유가려씨가 “(조사 과정에서) 센터 측 직원(국정원 파견)으로부터 폭행·협박 및 가혹 행위를 당했고, 자백하면 오빠와 함께 남한에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공동변호인단 소속 김용민 변호사는 센터에서 나온 직후와 법정에서의 증언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전자의 경우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던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나름 자신의 주장을 펴는 등 달랐다고 주장했다. 센터에 있을 때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거짓된 내용을 증언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8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유가려씨의 센터 및 국정원에서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내용이 구체적이었음에도 사진 등 객관적 증거에 의해 모순되는 진술이 상당수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2년 설 전후에 대해 유가려씨가 증언한 유우성씨의 행적과, 사진에 남아 있는 유우성씨의 행적이 일치하지 않는 식이다.

 

재판부는 유가려씨가 대체로 일관된 진술을 하다가 법정에서 이를 전면 번복한 점을 참고하되, 객관적 증거와 유씨 진술이 상당 부분 어긋나는 점들을 참작했다. 이로써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관련 혐의를 기소한 핵심 증거였던 유가려씨의 증거능력이 깨졌다. 1심 선고에서 유우성씨는 북한 이탈 주민 및 여권 관련법 등에만 유죄를 받아 징역 1,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그를 간첩으로 옭아맸던 국가보안법 관련 혐의는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센터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 파견 직원의 폭행·욕설 등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피고 측의 주장은 판결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공판 과정에서 반말 수사 사실, 처벌 조항이 없는진술 번복죄를 빌미로 협박한 사실, 달력을 제공하지 않고 독방에 수용한 사실 등은 국정원 직원 신문 과정에서 확인됐다.

 

 

중앙합동신문센터는 국정원의 안방?

 

 

1심 판결 후 검찰은 항소했다. 현재 2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검사 측은 1심 공판 당시 핵심 증거였던여동생 증언대신 새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유우성씨의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이다. 검사 측이 제시한 문건과 변호인 측이 제시한 문건이 서로 달라 위조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중국 외교 당국에서 검찰 측의 문건이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하면서, 2심 공판의 핵심 증거가 지닌 신빙성이 크게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1심 선고에서 핵심 증거였던여동생 증언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2심 공판이 진행 중인 현재, 검찰 측이 핵심 증거로 내세운 출입경 기록이 위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물론 이번 사건의 결론은 향후 2심 선고, 나아가 대법원에 이르러서야 최종적으로 도출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 자체에 대해 무리한 공안 몰이 기소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매섭다. 사건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국정원, 기소를 이끌어낸 검찰이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채간첩 만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의혹의 핵심에 국정원이 있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 파견된 직원들은 국정원장으로부터 사법경찰관리 임무를 부여받는다. 유가려씨는 센터 직원에게 조사를 받은 후 곧바로 국정원 수사관들에게도 조사를 받았다. 관련 진술 자료는 곧 검찰의 핵심 공소 요지로 활용됐다.

 

이에 대해 피고 측 변호인단은센터의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통제받지 않은 권력 행사가 이뤄질 수 있다. 법에 의해 최장 6개월간 수용할 수 있다. 간첩을 발견해낼 가능성도 있지만, 고의적으로 간첩을 만들어내기에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영향 아래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여동생 유가려씨로부터 확보한 센터 내 진술은 1심 재판에서 대부분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유씨의 진술대로라면 그가 오빠 유우성씨의 공범인 셈인데, 피고인이 아닌 참고인으로 조사했기 때문이다. 현행법 및 판례에 비춰보면, 이런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유가려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고수했을까. 피고 측은변호인 접견교통권과 진술거부권 등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강압과 회유를 섞은 방법으로 확보한 진술의 증거능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검사 및 국정원 측은여동생이 간첩 수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으려 했다고 맞선다.

 

 

유씨의 4개 이름어떤 게 진짜일까

 

 

3일 검찰 등 사정기관에 따르면 유씨는 2004 4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당시 자신은 탈북자라고 주장했다. 1980년 중국 국경과 인접한 함북 회령시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유광일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유씨의 주장은 나중에 거짓으로 들통났다. 유씨는 중국 국적 화교이고, 본명은 유가강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는 재북 화교라는 신분 덕에 북한과 중국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갔으며, 유가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흔적은 이 사건과 관련해 위조 의혹이 일고 있는 문서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가강과 유광일이라는 이름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 사용한 유씨는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를 동시에 속이는 이중생활을 한 셈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이름을 번갈아 사용한 것이다.

 

유광일이라는 가공의 인물은 유씨의 1심 재판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났다. 사정은 이랬다. 유씨는 2009년 공안당국의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탈북자 신분으로 북한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간 것이 공안당국의 의심을 산 것이다. 당시 수사기관은 유씨의 간첩 행위를 의심했던 게 아니라 국적을 의심했다. 유씨가 탈북자가 아니라 실은 중국인이 아니냐는 게 당시 공안당국의 판단이었다.

 

이때 유씨는 북한 공민권자임을 증명하겠다며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라는 제목의 북한 신분증을 하나 가져왔는데, 여기에 유광일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씨는 이 신분증을 우리 공안 당국에 제출까지 했다.

 

하지만 유씨의 1심 재판과정에서 이 신분증은 위조된 것임이 드러났다. 유씨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중국과 한국 정부를 속인 데 이어 북한 신분증까지 위조했던 것이다.

 

 

“간첩 의심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나목소리 높아져

 

 

유씨가 영국의 리버풀 홈오피스에 망명을 신청하던 2008년 당시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새로 드러났다. 시기의 선후관계를 따져봤을 때 과거 우리나라 입국 시 사용했던 가공의 인물유광일은 이후에도 뿌리를 뻗쳐 영국에서 탈북자 행세를 할 때 성만 바꿔 다시 사용했던 것이다.

 

이 무렵 유씨의 국적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재북 화교 유가강으로 통했지만 한국에서는 탈북자 유광일이었다. 동시에 영국에서는 북한 출신 망명 신청자 조광일로 행세했다. 유씨가 2010년 현재의 이름인 유우성으로 개명했음을 감안할 때 유씨의 확인된 이름은 현재 모두 4개다.

 

유씨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써신분세탁을 했을 뿐만 아니라 출생일도 번복한 전력이 있다. 애초 유씨는 탈북자로 인정받아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을 당시에는 9월생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2010년 개명하면서 유씨는 출생월을 10월로 수정해 주민등록번호를 재부여받았다. 유씨의 실제 생일이 어떤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상태다.

 

그간의 상황을 종합할 때 유씨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최소 4개국 공문서를 위조 또는 도용한 것으로 의심된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유우성이라는 이름으로 탈북자 행세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정착지원금 등 2500만원가량도 챙겼다. 이 부분은 1심 법원에서 유죄까지 받았다.

 

중국에서는 화교 유가강이라는 이름을 갖고 북한을 왕래했고, 2007년에는 중국 호구증을 아예 위조해 발급받은 사실이 있다. 유씨의 이런 행적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은 없는 상태다.

 

또 북한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의 인물 유광일을 만들어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원인 척했다.

 

이 과정에 북한 측 인사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게 공안당국 판단이다. 북한 당국의 개입 없이 북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냐는 게 의문의 요지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유씨가 서류 위변조를 통해 여러 차례 신분세탁을 하는 등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온 게 사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그를 의심치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증거 위조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유씨의 진짜 실체가 뭔지도 다시금 생각해 볼 여지도 많다고 말했다.

 

 

fnk_62106_75591_2235.jpg

 

 

 

 


유우성, 망명·신분세탁 의혹제기에 직접 해명, "무료영어수업 듣고자 난민 신청"


 

검사측의 증거가 위조된 정황이 드러난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가 2008년 영국에 망명신청을 했던 사실을 일부 언론이 부각시키며 '정체를 알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유씨가 직접 해명하고 나섰다.


4 <세계일보> <TV조선> 등은 ▲2008 1월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정부에 망명 신청유가강·유광일·조광일·유우성 등 4개의 이름 사용탈북 뒤 발급된 주민등록번호 변경 등을 거론하며 유씨의 정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신분세탁을 하려했던 게 수상하고, 특히 영국에 망명신청을 한 것은 '간첩 활동에 염증을 느껴 제3국으로의 도피를 생각했을 것'이라는 검찰의 의견을 인용했다.


"영어 배우러 갔다가 무료영어수업 듣고자 난민 신청"


이에 대해 유씨는 4 <TV조선>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유씨는 <TV조선> 기자에게 보낸 메일을 다른 언론사 기사들에게도 함께 보냈다. 


유씨는 "대학교 고학년을 올라가며 영어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하고 또한 영어시험도 통과해야만 졸업할 수가 있어 영어를 배우고자 영국에 유학갔다 온 것"이라며 "여러 탈북선배·지인으로부터 영국에 난민으로 가서 영어공부를 6개월에서 1년씩 배우고 오는 탈북청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으로 망명간 것은 아니고 순수 영어를 배우러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씨는 "난민을 신청한 탈북자분 집에서 영어학원을 통근하여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막상 영국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 현지 탈북자 분과 함께 살며 월세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였다" "그때 난민들 상대로만 영어를 공짜로 가르쳐주는 영어클래스가 여러 개 있어 영어를 배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영국의 다른 탈북자들과 똑같이 난민 신청을 하고 난민 영어반에서 공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 정부로부터 생활비용은 얼마 받지 못했고, 알바하고 세차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아 난민 영어반과 자비로 돈을 들여 영어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2008 6월 경 한국에 돌아와 복학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며 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쓴 데 대해 유씨는 "유광일로 한국에서 살면서 영국에 난민을 신청하는데 한국에서 쓰던 이름과 똑같이 신고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국에 정착한 것으로 돼 있는 유광일로는 난민신청이 안 돼 다른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수사기관 조사 당시 이런 사정을 다 말씀드렸고, 진술서로도 남아 있다"고 밝혔다.


"'유광일'도 북한에서 애용, 오랜 수사 뒤 운명 바꾸려 점집에서 '유우성' 받아"


탈북한 뒤 유가강이란 본명 대신 유광일로 이름을 신고한 데 대해 유씨는 "유가강이란 이름은 제가 북한에서 쓰던 중국이름이고 북한에서 유가강만 쓴 것은 아니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유광일이라고도 불렸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바뀐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북한에서 애용하던 이름이 유광일이다, 중국식 이름 유가강은 발음상 힘들어 친한 분들은 유광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북한 정식 서류에는 다 유가강으로 표기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에 입국하며 북한에서 평상시 애용하던 유광일로 신고했다, 이런 내용은 수사기관에서 2009~2010년 조사받을 때 이미 다 말씀드린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0 9월 유광일에서 유우성으로 개명한 데 대해 유씨는  "2008년 말부터 2010 7월 까지 국정원, 경찰청, 검찰, 수사를 받았다, 또한 2010 3월경 가택수색도 당했고 전화도청도 수사기관에서 오랫동안 해온 것을 나중에 통보 받았다"  "그 때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 힘들었고 저는 6개월 넘게 한 정신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유씨는 "수사를 오랫동안 받으며 스트레스가 쌓이고 내 운명이 너무 안 좋다고 판단하여 점집을 찾아 다니며 점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점 보시는 분은 이름 안 좋다며 바꿔야 운수도 좋아지고  성공할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 이름으로 살 것을 생각하고, 또 이름 바뀌면 운수도 좋다고 하여 고민 끝에 결심하고 점집에서 만들어 준 이름으로 개명하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자신을 위장하고자 이름을 개명한 것이 전혀 아니다"라면서 "그때 점집에서 받은 이름에 대한 해석자료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필요하면 팩스로 보내겠다"고 했다.


"음력생일로 나온 주민등록증, 통일 이후 생각해 양력으로 정정"


2009 2월 주민등록번호(생일)를 변경한데 대해 유씨는 대한민국 입국 당시 합동신문센터에서 '한국에서는 주로 음력생일을 많이 쓴다'고 해서 음력생일을 말씀드렸다" "2004 8월 교육기관을 거쳐 사회에 나왔을 때 받은 주민등록증은 음력생일로 기재돼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대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에 법원에 제대로 된 양력생일로 정정하게 된 것"이라 밝혔다.


그는 "남북한은 언젠가는 통일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면 북한에서 받은 준의사자격증 등은 쓸 수 있다고 생각돼 북한에 공식서류에 기재된 양력생일 10 26일로 통일화 하자는 생각에 생년월일을 바로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씨가 주장한 대로 현재의 유씨의 주민등록번호 상의 생년월일을 음력으로 변환했더니 변경 전의 주민등록번호와 일치하는 날짜가 나왔다.

유씨는 <TV조선> 기자에게 정정보도를 부탁하면서 "저는 TV조선 채널을 즐겨보는 시청자입니다, 항상 있는 사실 그대로 방송하는 공정한 방송사라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간첩’ 꼬리표, 역사는 어떤 평가 내릴까


국정원이 센터 내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책임 없는 수사권을 남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권 행사 때는 철저한 통제와 적법 절차가 준수되어야 하는데 국정원 직원들은 정작 수사를 하면서도 이중적인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신분이나 직무는 알리지 않는 모순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판 과정에서 인권침해로 간주할 수 있는 상당수 행동이 유가려씨를 향해 자행됐음이 확인됐다. 6개월 동안 센터의 독방에 수용된 채 조사를 받아온 유가려씨가 극도의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배경에 국정원의 직권 남용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강은 탈북자 유광일로 살고자 했다. 남한에서의 새 삶은 유우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척하고자 했다. ‘북한 사회에 염증을 느껴 남한에 왔다는 그를 간첩으로 규정하려면, 그에 합당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그런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1심과 2심 공판을 거치며, 각각의 핵심 증거는 증거능력을 의심받았다.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 수집 과정에 대해 대대적으로 의혹이 불거지기까지 한 상황이다. 당사자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재북 화교 출신의 한 탈북자에게 붙였던간첩꼬리표에 대해, 훗날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향후 진행될 재판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