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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새정부위원회 실체·활동 전모

 

 

김일성 시대인 1960년대에 북한을 탈출한 고위급 망명자들이 중국 모처에서 회합을 가졌다.

 

중국, 60년대 초부터 북한 고위 망명자 주축 대북공작 착수

북한 망명그룹 특별 보호북한급변 시나리오수립·강구

"反김정일 군부 실력자 베이징 오라親中정권 접수 구체화

 

국제사회에서는 포스트 김정일 정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중국에 의한 북한 정권 교체 논의다. 현재 경제봉쇄 상태인 김정일 - 김정은 정권이 에너지와 식량을 공급받는 생명줄이 바로 중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움직임이 얼마나 즉각적일지 자명해 보인다.

 

<월간중앙> 1960년대부터 조직한 북한의 고위급 망명자 그룹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 망명자 그룹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이후 북한 망명정부를 준비 중이다. 중국이 지원하는 북한 정권 인수팀인 셈이다. 그 전모를 공개한다.<편집자>

 

 200516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는중국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북한을 침공해 과도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충격적인 글이 실렸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브루스 길리는 개인 견해라고 밝힌 이 글에서미국과 아시아 우방들은 북한을 침공하는 중국의 작전에 외교·병참을 지원해야 하며, 유엔은 합법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중국의 침공을 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필수 단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장하는 중국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임무를 맡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우선 현재 미국과 유럽의 우방 군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력 투입된 상황에서 일본과 한국은북한 임무를 수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국경을 맞댄 중국은 다른 나라를 통과할 필요도 없으며 대응할 군사력도 갖추고 있다는 게 길리의 주장이다. 그는중국은 특히 만주의 조선족 자치지역 통치 경험이 있어, 과도기에 북한을 다스릴 관료나 행정기관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장엽, “평양에 北京 대리정권 세우자

 

북한 망명정부 논의의 핵심인물들인 자유북한새정부추진위 김계철 위원장(전 인민군 장령), 김덕홍, 황장엽, 박갑동(전 남로당총책)씨가 2002년 서울의 국정원 안가에 모였다.

 

전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 씨도 이런 주장을 편 바 있다. 그는 2004년 일본의 월간 <겐다이(現代)> 10월호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핵 개발과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을 저지할 나라는 중국뿐이다. 김정일 정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중국이 움직이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 고사(枯死) 작전에 중국이 참여하도록 일본과 미국이 압력을 넣어야 한다. 그런 다음 평양에 베이징(北京)의 대리정권을 세우는 것이 전쟁을 막고 한반도의 핵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미국 허드슨 연구소의 마이클 호로위츠 연구원도 최근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 한 자리에서 중국이 북한 정권 교체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중국은 비용과 자국 이익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중국은 김정일 정권 유지를 위해 지불해야 할 정치적 대가가 점점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따라서 대북정책이 다른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로위츠는 특히중국은 북한의 한 장군을 선정해 그가 김정일 정권을 승계하도록 하는 계획을 이미 마련하고 있다고 확신한다중국은 이 장군이정권을 탈취해 국가 위기를 선언하고 중국 군대 20만 명을 보내주도록 요청한다는 시나리오를 검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 관계자 등 믿을 만한 소식통이 있다고 덧붙였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내정책 자문위원장을 지낸 호로위츠 연구원은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안을 제정하는 데 깊숙이 개입했으며, 북한 붕괴에 대비한 망명정부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해 왔다.

 

그렇다면 최근 잇따라 제기되는 중국에 의한 북한 정권 교체설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일까?

 

연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기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조직적 움직임을 포착했다. 중국이 1960년대 초반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났거나 김일성을 반대하다 북한에서 탈출한 망명자와 그의 후손들을 지난 40여 년간 은밀히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

 

북한이 그동안 끊임없이 이들 망명자 송환을 요구했으나, 중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최근의 탈북자 송환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들 망명자 그룹은 최근의 탈북자들과 달리 중국 국가이익 차원에서 별도로 활용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중국 당국은 망명자들을 극진하게 대우했다. 가령 이들은 사회과학원 같은 정부 연구기관에 연구원으로 등록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출근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국은 주택과 생활비는 물론 자식들에게 무상교육도 제공했다. 또 병이 나면 무상으로 치료해 주고 사망하면 장례까지 후하게 치러 주었다. 중국은 2004년 이들 망명자의 월급을 50% 인상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가로 중국은 이들 망명자에게 다음 사항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요구했다.

이름을 중국식으로 바꿀 것(이는 북한에서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함)

외국 출국 금지

외국 기자와 만남 금지 등이 주요 항목이다.

 

이 그룹의 명칭을 남북통일연합회에서 자유북한새정부위원회로 바꾼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우선 지금 활동중인 망명 회원들의 면면을 보자. 괄호 안은 북한에서의 직책이다.

 

▷명예회장:김강(金剛·문화선전성 부상, 인민군 총정치국장, 인민군 중장)

▷회장: 김계철(인민군 장령)

▷부회장: 박동철(인민군 장령)

▷부회장: 김한경(직업총동맹 중앙 부위원장)

▷부회장: 홍락응(직업총동맹 교육산별위원장)

▷중앙상무위원: 김정룡(정부병원 부원장, 인민군 소장)

▷중앙상무위원: 김중근(소련주재 대사관 외교관)

▷중앙상무위원: 성지문(보위부 국장)

▷중앙상무위원: 송 순(여성동맹중앙부장)

▷중앙상무위원: 김성숙(소련주재 외교직원)

 

수십 년 동안 중국 당국의 보호 아래 있다 노환으로 사망한 망명자들의 명단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리필규(내무상, 노동당 제3기 중앙위원),

윤공흠(상업상, 노동당 제3기 중앙위원),

서휘(직업총동맹중앙위원장, 노동당 제3기 중앙위원 및 정치국 위원),

홍순관(김일성 비서실장, 노동당 중앙당 기요과장),

조영(노동당 양강도위원장, 노동당 제3기 중앙위원),

리규철(<노동신문> 부주필),

로영균(직업총동맹 중앙문화 산별위원장)

김현옥(직업총동맹 중앙문화교원 산별위원장),

리희상(소련주재 대사관 외교관, 노동당 함흥시 부위원장),

조진(<민주조선> 부사장),

강수봉(인민군 기계화여단 정치부 여단장, 인민군 소장),

리상조(소련주재 대사관 특명전권대사, 인민군 부총참모장, 중장),

강상호(내무성 부상)

 

조직에서 대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은 망명 조직의 공개 총책인 김계철(73) 씨다. 그는 대구사범 출신으로 경북 안동에서 한국전쟁을 맞았다. 당시 그는 인민군에 합세해 전쟁에 뛰어들었고 도당위원장 추천으로 인민군 장교가 되었다. 1·4 후퇴 이후 평북 강계에서 인민군 중좌(중령) 계급을 받았고, 이후 중국으로 군사유학을 떠났다.

 

귀국한 뒤 그는 평양에서 대학에 다니며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1961년 모략에 걸려 함경도 정치범수용소에서 6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1965년 석방된 그는 다시 보위부 국장이 된다. 이후 외교부로 자리를 옮겨 중국을 내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6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하며 김일성 체제에 염증을 느낀 터였다. 1966년 가족과 운전사까지 모두 데리고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김계철 씨를 정치적 망명자로 받아들이고, 장군 예우를 했다.

 

자유북한 새정부위원회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의 끊임없는 송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이들을 40여 년 동안 비밀리에 보호했다

▷이들이 북한 내부에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이들은 현역 북한군 장성 2명이 자신들과 연결된 북한 내부 반정부 조직에서 활동 중이라고 주장함).

▷이들이 상주대표부를 미국 워싱턴DC에 두고 미국 정부의 후원을 얻으려고 시도중이다.  .

 

이들 망명자 조직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보자. 중국 당국이 보호하는 북한 고위 망명자들의 존재를 알아챈 한국의 정보기관원이 1980년대 말 중국의 산시(陝西)성 타이위안(太原)시로 한 망명자를 만나려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중국군의 정보계통 학교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의 정보기관 요원은 망명자의 집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2층의 망명자 가족 6층으로 급히 이주

 

故 리희상 씨(함흥사당 부위원장, 모스크바 주재 외교관)와 가족, 중국 당국은 리희상 씨 사망 후에도 휴가족들을 보살피고 있다.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에 망명자들이 모였다.

 

중국 정보당국은 한국의 기관원이 현지에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비상이 걸렸다. 한국에서 온 요원이 묵는 호텔로 찾아갔으나 이미 이 요원은 망명자의 아파트로 떠난 뒤였다. 중국당국이 취한 비상조치는 사람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이었다.

 

이 망명자의 집은 아파트 2층이었는데, 세간은 모두 그대로 둔 채 망명자 일가족을 6층으로 옮기고, 대신 6층에 살던 중국인 가족을 2층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이 아파트는 산시성 간부들의 관사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이런 조치가 취해진 후 한국의 기관원이 해당 주소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온 이 집 부부와 가족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방문한 요원은 한국에서 왔으며 조선사람을 찾는다고 했으나, 대답은 금시초문이라는 것 외에는 얻을 것이 없었다. 이 사건 뒤 중국당국은 이들 망명자 그룹에게 절대로 신분을 노출하지 말라고 주의를 내렸다. 물론 이들은 이후 한국 방문길도 막혔다.

 

북한과 혈맹 관계인 중국이 1960년대부터 북한 붕괴에 대비했다는 것을 일반인들로서는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는 당시 동북아 정세를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은 소련과 심각한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과 소련 사이에 끼인 북한이 이 무렵 선택한 외교노선은 등거리 외교였다. 주체사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중국은 1950년대 대 약진운동을 끝내고 1960년대부터 문화혁명을 벌이고 있었다. 이 문화혁명 시기에 중국과 북한은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자유북한 새정부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은 1960년대에도 내부적으로는 고위급 북한 망명자들을 치켜세워 김일성 정권 교체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인민해방군 내부에 김일성 정권 교체를 담당하는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다. 이름하여조선해방혁명군’. 1960년대 당시 북한에서 탈출한 망명자들과 조선족으로 구성된 이 군사조직은 일정한 조직 체계를 갖추고 군사훈련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또 이 무렵 중국 공산당 중앙당 대외연락부 안에 북한부와 남한부를 따로 두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정보단위는 당((()에 모두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입김이 센 정보기관이 바로 당중앙대외연락부(중앙연락부).

 

중국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앙연락부의 위상은 정무원 소속인 외교부보다 훨씬 높다. 중앙연락부는 당의 대외정보 수집을 전담하는데, 특히 북한과의 당() 대 당() 관계는 모두 여기서 도맡는다. 문제는 이 대외연락부 사업은 모두 중국의 국가기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진행하는 사업은 거의 공개된 바가 없다.

 

중국은 대외연락부 안에 북한부와 남한부를 운영하면서 남북한 정부의 지지 기반과 내부 정세 등을 분석하며 공작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러내놓기 곤란한 국가기밀이지만 김일성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는 방안과 한국 정부를 와해시킬 수 있는 시나리오도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또 인민해방군 내에 남북한을 전담하는정보독립연대를 운영해 왔다. 이 부대 소속 군인들은 북한과 한국의 방송을 완전히 가상적국의 방송으로 생각하고 24시간 기록했다. 이 시설은 애초 중국 산시성의 깊은 산속에 기지가 있었으나 한반도와 너무 거리가 멀어 1967년 랴오닝(遼寧)성의 푸란덴(普蘭店)으로 옮겼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활동중이다. 이 부대원들은 술만 먹으면 남북한의 노래를 부를 정도로 북한과 남한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중국의 내부 기관들에서는 어김없이 북한에서 탈출한 고위급 망명자들이 일했다. 중국이 망명자를 이용해 국익을 도모하는 것은 북한의 경우만이 아니다. 요컨대 중국의 전통적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중·소 분쟁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965년 중국과 소련은 우수리강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고 대립하다 급기야 강 한가운데 있는 진보도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중국군의 대승. 당시 중국군은 소련군을 대거 포로로 잡았는데, 그 포로 처우가 매우 극진했다.

 

중국은 소련군 포로들에게 정보를 누설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마냥 편안하게 대우했다. 이것이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의 홍군(紅軍)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군과 싸울 때 포로를 다루던 기법이었다. 결국 포로들은 소련군의 정보를 다 누설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이들 포로를 중국은 이후에도 극진하게 예우했다.

 

  마오쩌둥인민전쟁론의 포로 대우 기술

 

당시 북한과 중국은 국경에서 총격전까지 벌일 정도로 사사건건 충돌했다. 뿐만 아니라 만주의 조선족까지 북한 지지파와 중국 지지파로 갈려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실제로 북한과 중국은 관계가 악화하자 압록강 상류인 북한의 혜산과 중국의 장백현에서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강을 메우기도 했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들은 등짐으로 산의 흙을 져 날라 강을 메웠고, 북한은 함경북도·자강도·양강도의 트랙터를 동원해 강을 메워 나갔다. 이렇게 해서 심지어 압록강의 폭이 5m 정도까지 좁아진 적도 있다고 한다. 북한군은 확성기로 중국을 비난하기도 했다. 총격전은 이런 와중에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최근 중국이 북한과의 국경에 인민해방군 20만 명을 새로 배치했다는 것은 북한과 중국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3년부터 중국은 선양(瀋陽)시 동북구 군구사령부에 북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정보기관을 신설하고 북한의 책과 문서를 마구 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북한새정부위원회는 북한 내부에도 조직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3 6, 일본 후지TV는 두만강을 통해 중국으로 탈북하는 50대 북한 여성을 촬영해 보도한 바 있다. 당시 후지TV 취재진은 이 탈북 여성의 봇짐 속에서조선혁명군사위원회 포고문이라는 문건을 찾아내 공개했다. 문건 내용 요약이다.

 

  첫째: 사랑하는 조선인민군 장병들이여, 독재자 김정일은 최후로 미국을 상대로 핵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야만적인 3대까지 세습독재 군사통치를 지탱하는 독재자 김정일을 당장 체포해 처형해야 한다.

 

 넷째: 지금까지 북조선에 대한 남조선과 세계의 모든 원조는 조선 인민에게는 좁쌀 하나 차려진 것이 없으며 오직 그 많고 많은 돈과 식량 할 것 없이 모두 독재자 김정일의 개인 손에 들어가고 세습독재 체제 강화와 군비증강, 핵폭탄·미사일·생화학무기 등 제조에 충당되었을 따름이다.

 

  때문에 남조선과 세계는 절대로 독재자 김정일 세습독재 군사통치집단에게 동전 한푼도 지원해 주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만약 독재자를 계속 지원한다면 조선 인민은 그를 반역자로 보고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 (중략) 조선혁명군사위원회 주석 리남호 2003 31일 평양.’

 

자유북한 새정부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 문건은 북한에서 활동하는 자신들의 반정부 조직에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지금이라도 서울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의 북한군 초소에 전화를 걸어 강 얼음 두께가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두만강 국경의 두 군데 지점을 중국 공안의공무 여권을 가지고프리 패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으로 북한 내부를 왕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무기까지 실어 나를 수 있다고 장담했다. 북한 내부에는 몇 십 년 전부터 군 장성을 포함한 다수의 반정부 조직이 있다. 이 내부 조직끼리는 서로 연락이 안 된다. 그렇지만 바깥의 우리는 이들 조직 모두와 연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북한 내부의 반정부 조직에서는 달러만 들여보내 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며 달러 송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자세한 내부 조직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대신 그는 자신들의 북한 내 조직이 매일 실시간으로 북한 내부 사정을 전해온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전했다는 최근의 북한 사정을 잠시 옮겨보자.

 

 

  북한 내 반정부 조직과도 연결

 

두만강 국경의 비밀통를 통해 북한으로 잠입한 자유북한새정부위원회 김계철 위원장.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감금 상태다

 

▷김정일의 친필 서신이 중도에 차단돼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김정일이 군대의 인심을 크게 잃었다

 

▷중국돈 100위안만 쥐여주면 국경수비대가 탈북을 눈감아 준다

 

▷장군들의 민심이 돌아서고 있다. 이유는 김정일의 잦은 체포와 숙청 때문이다(평양 모란봉에 장군아파트가 있는데, 최근 한밤중에 끌려가 사라지는 장군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곤란을 겪고 있다. 특히 지하 군수공장(지하 160∼200m)에서 펌프를 돌리지 못해 지하수가 흘러 공장은 폐쇄되고 기계를 거의 지상으로 올렸다 등.

 

자유북한새정부위원회는 현재 미국 정부에도 선을 대고 있다. 워싱턴에 상주대표부를 두고 미국 정가에 로비를 계속하고 있으며, 최근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샘 브라운 벡 상원의원(공화당, 북한인권법안 제출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당)에게 각각 편지를 발송했다. 이 가운데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한다.

 

“우리는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기 전에 북한을 탈출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망명자들입니다. 우리 자유북한새정부위원회 회원들은 이제 300명에 육박하며, 그들은 전직 인민군 장성, 외교관, 과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본부를 베이징, 서울, 워싱턴에 두고 있으며, 모스크바, 도쿄, 카자흐스탄, 몽골 등 동남아 제국에 흩어졌던 망명객들이 점점 합류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대통령 각하에게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기존의 정권교체(Regime Change) 정책을 포기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곡히 청원합니다. 이유는 이른 시일 안에 정권 교체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단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략)”

 

이들은 이 편지에 망명정부 구성원들의 인사파일을 첨부해 지난 1월 중순 백악관에 전달했다. 미국은 정보기관을 동원해 이들 인사의 신원을 엄격하게 조회할 것이다. 신원조회가 끝나면 미 정부는 지원 수준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미국에 선을 대는 것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모두 인정하는 망명정부를 꾸리기 위해서다. 이 과도정부로 김정일 정권을 접수하고 초기 총선 이전까지 북한 전역의 125개 군()에 요원을 파견해 다스린 뒤 총선이 실시되면 빠지겠다는 구상이다.

 

이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5성급 호텔을 몇십 년 전부터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북한 내부에서 체제 붕괴의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이 호텔로 북한의 군부 실력자를 불러들여 진을 치고 북한 정권 접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에서는 한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기 때문에 북한 붕괴시 망명자인 자신들이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역에 망명자들이 다시 모였다. (김충식 전 조선노동당 평양사시당 부위원장, 김계철 전 인민군 장령, 송순 전 여성동맹중앙부장. )

 

중국이 망명자 조직을 지금까지 끌어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는 것이지만 중국은 이미 밖에서보장한다고 해서 북한이 유지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북한이 밖의 공격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 모순 때문에 안에서부터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북한이 붕괴한다면 중국의 주변뿐만 아니라 중심지역에힘의 공백이 생기며, 이 공백은 중국 영역에까지 충격을 준다는 사실을 중국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은 필수불가결하다.

 

북한이 붕괴할 경우 이 지역에서 생긴 힘의 공백은 자연히 큰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이다. 중국이 이에 대비하려고 선수(先手)를 친 것이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역사문제로 제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외정책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절실한 책략이었던 셈이다. 40여 년 전부터 비밀리에 북한의 고위급 망명자 그룹을 중국이 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힘의 공백이 생길 경우 그 처리 문제도 철저하게 중국과 미국의 협상 과정에서 진행될 것이다. 가장 먼저 불거지는 것이 북한과 대만의 교환 문제다. 북한이 붕괴 상황에 빠지면 미국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중국은 북한 영토를 놓고 미국과 협상해야 할 처지다. 여기서 대만과 북한이 교환될 가능성이 크다.

 

‘동북공정’은 북한 붕괴 대비한 중국의 先手

 

중국으로서는 또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없어질 때 주변 국경의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우선 신장(新疆티베트·만주 문제가 한꺼번에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에 가장 우수하고 수가 많은 남만주의 조선족이 흔들리면 중국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 붕괴라는 힘의 공백이 생길 때 어떻게든 중국의 안전에 필수적인 지정학적 완충지대를 다시 확보해야 한다. 중국 주변에 완충 벨트를 방어적으로 쌓아 중국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중국이 참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잘라 말하면 중국은 자신들이 좌우할 수 있는 정권을 평양에 심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베이징으로서는 40여 년 전부터 보호하던 북한의 망명자 그룹과, 이들과 연결된 북한 내부의 반정부 조직이 상당히 매력있는 대안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