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조선족·정일=러 귀국자·고영희=재일교포 2本色 귀국자 집안

 

 

일본의 공식기록에 따르면 고영희의 생일은 1952 6 26일이다.

 

다시 말해 만약 그녀가 살아 있다면 26일에 '환갑(60)'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10여 년간, 노동신문은 626일 또는 그 전날에 후계자와 관련된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특히 2011 626일에는 '후계자 전문 작가(作家)'로 알려진 송미란의 글이 신문에 게재돼 눈길을 끌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올해의 626일 노동신문에 어떤 우상화 글이 올라올지 주목된다.

 

지난 8일 지난해 북한에서 간부용으로 제작된 '고영희 기록영화'를 북한당국이 뒤늦게 수거하는 소동을 벌였다.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이라는 이 영화는 당초 김정은 생모(生母)에 대한 우상화 차원에서 간부교육용으로 제작되었으나,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확산됨에 따라 북한 당국이 수거에 나섰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고영희의 이름이나 출신성분, 경력 등이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일반 주민들의 추측과 상상이 버무려져 '~카더라'식의 유언비어 발생을 우려한 조치였다.

 

지난 10여 년간, 고영희의 우상화 작업은 약 3번정도 은밀히 시도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그러니까 김정일의 와병과 김정은 후계 확정 이후에는 사실상 중단됐다. 김정일에게서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 배경을 '백두혈통의 정당성'으로 선전했던 북한 입장에서는 재일교포 귀국자인 고영희의 경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마땅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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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만수대예술단 일본 공연에서

  당시 조총련의장인 한덕수와 고영희.

  꽃을 든 사람이 고영희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조총련) 내부에서도 고영희가 재일교포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알고 있어도 발설해서는 안되는 금기(禁忌)의 영역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공식적 논의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고영희에 관한 공식 언급은 지난 김정은 생일날(18) 방영된 북한의 기록영화가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중앙TV의 해설자는 "언젠가 216(김정일 생일)에도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장군님(김정일)을 어머님(고영희)과 함께 밤새도록 기다린 적도 있다"는 김정은의 회고를 소개했다.

 

데일리NK 도쿄지국에서는 고영희의 출신 경위에 관한 독자적인 취재를 거쳐 몇 가지 중요 사실(fact)을 확보했다. 고영희의 부친은 일제식민지 시대 일본 육군이 직할하는 히로타(廣田) 재봉소에서 근무하던 고경택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는 밀항선박을 운영했던 것이 탄로나면서 일본에서 강제퇴거를 명령 받았고, 결국 1962년에 북한으로 넘어갔다.

 

 

 

원래 고영희의 이름은 '고희훈'이었다. 일본명은 '다카다(高田) 히메()'. 아버지 고경택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가 후에 '고영자'로 이름을 바꾸었고, 마지막으로 '고영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73년에는 만수대예술단의 무용가로서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후 북한에서 김정일의 세 번째 여자로 들어가 정철과 정은 그리고 여정을 낳았다.

 

데일리NK 2012 214일자 '김정은 생모가 노동신문에 공훈 배우로 소개' 기사에서 고영희로 추정되는 인물이 노동신문에 등장했던 사실을 소개했다. 노동신문은 당시 '고용희'라는 이름을 소개했는데, ''이라는 글자에 미스터리가 남긴 하지만 만수대 예술단에서 훈장을 받는 인물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 밖에 없을 것이라는 당시 예술단 단원들의 증언을 담았다. 

 

북한 당국은 김정은 우상화 과정에서 고영희의 출신성분이나 경력을 대놓고 선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고영희의 출신 성분은 식민지 시대와 분단과정을 살아왔던 재일교포들의 피와 땀, 고뇌가 담겨있는 역사이긴 하지만, 김정은의 '백두혈통'에 대한 모독의 의미도 담고 있다.

 

백두혈통의 후계자라고 하는 김정은의 생모는 일본인 이름까지 가졌던 일본 출생이고, 외조부 역시 일본 육군 밑에서 일하다가 한국과 밀항 사업을 벌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북한에서 따지는 출신 성분으로는 최악중에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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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 30일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이름으로 발령된 정령./노동신문

 

재일교포 귀국자들은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째포'라는 비아냥 속에 많은 차별과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특히 북한 체제에 순응하지 않았던 재일교포 귀국자들 중 상당수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이런 정책은 김일성 시대부터 존재하던 것인데, 솔직히 말해 북한에서 '귀국자'의 원조를 꼽자면 당연히 김일성을 빼놓을 수 없다.

 

김일성은 14살 때 아버지 김형직과 함께 북한을 떠나 중국 지린성(吉林省)으로 이주했다. 이른바 중국 조선족의 한 사람이며,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야 북한에 돌아온 전형적인 '귀국자'인 셈이다.

 

김정일 역시 러시아에서 출생해서 '유라'라는 러시아식 이름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북한의 로얄패밀리는 모두 '귀국자' 핏줄이다. 특히 김정일은 재일교포 귀국자 사이에서 2 1녀를 낳았다. 그 아들 중에 한명이 지금 북한의 최고 지도자다.

 

김정은의 출신성분을 요약하면, 할아버지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살다 왔고,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어머니는 일본에서 건너왔다. 북한 당국이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는 '백두혈통'의 순혈주의는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과정에서 고영희의 출신배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인다. 일본 마이니찌 신문이 고영희 기록영화를 입수했다고 하니, 외부세계에서의 공개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각종 보도와 대북민간방송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도 고영희의 존재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영희에 대해 북한 당국이 제 아무리 미사여구로 범벅된 선전을 벌인다 한들 결국은 김정은을 향한 칼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와 관련해 관전포인트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다.(데일리)

 

 

 

프리엔케이 - 역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