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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북·미 핵협상을 위한 고위급회담 대표로 활약하며 북한의 대미외교를 총괄했던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지난 20일 식도암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21일 보도했다.

 

방송은강석주 동지는 급성호흡부전으로 주체 105(2016) 520 1610 76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동지의 영구는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안치되어 있다고 밝혔다. 방송은 또강석주 동지는 1990년대 초부터 반미 핵 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외교지략과 탁월한 영도를 실현하는 전초선에서 활약하였다오랜 기간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강석주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된다고 전했다.

 

 

김일성종합대학 불어과를 졸업한 뒤 외무성 제1부상 등을 역임한 강 전 비서는 북·미 대화가 처음 시작된 1990년대 북한의 대미외교를 상징하는 인물로 각인돼 있다. 그는 1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 북한 대표로 미국 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 당시 북핵특사와 오랜 줄다리기 끝에 1994·미 기본합의서(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당시 강석주는 외교관답지 않은 직설적이고 솔직한 언행으로 미국 대표단을 여러 차례 당황하게 만들었다. 회담 도중 미국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 부분을 영어로 암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석주는김일성-김정일시대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할 때 배석했고, 이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러시아·중국·일본 등과 정상회담을 할 때도 빠짐없이 배석했다.

 

 

 

2002 10월 로버트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추궁했을 때 강석주는 이를 부인하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강석주는 2차 북핵 위기 국면에서도 베이징대 유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리자오싱(李肇星) 당시 중국 외교부장과의 친분을 활용해 막후에서 북핵 협상에 관여하기도 했다.

 

 

강석주는 2014 4월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로 임명돼 명실상부한 외교 사령탑 지위에 올랐다. 지난해 6월 당 대표단을 이끌고 쿠바를 방문한 것이 마지막 대외행보였다. 지난해 8월 이후에는 건강상 이유로 공식활동을 중단했다.

 

강석주의 사망으로 북한 외교라인은리수용 정무국 부위원장-리용호 외무상라인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강석주의 뒤를 이어 오랫동안 북·미 협상을 담당했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최근 당 중앙위원에 선출됐으나 외교 일선에 나설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대미관계와 핵문제에 관여했던 인물이 외무상에 올랐다는 점 때문에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경향신문)

 

 

 

 

프리엔케이 -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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