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민군은 왜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는가.

 

 

이는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한이 최악의 기근을 겪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군을 연구해온 수많은 전문가를 괴롭힌 질문이다.

대답 역시 이미 나와 있고, 대부분은 2012년 현재의 북한 인민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쿠데타를 막으려고 북한 정권 수뇌부가 만들어둔 이중, 삼중의 자물쇠가 북한군을 단단히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현재 북한군 주요 부대의 배치와 편제 자체가 외부 공격에 대한 대비보다는 오히려 반()쿠데타 조치를 위한 설계라고 분석할 정도다.

 

평양방어사령부(이하 평방사). 한국의 수도방위사령부에 해당하는 부대로 ‘91훈련소라는 위장명칭을 사용하는 이 조직은 김정일을 경호해온 호위사령부와 함께 유사시 정권 수뇌부를 지킬 최후의 보루다.

필요한 경우 820전차군단의 대규모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평방사령관에는 이을설, 박기서, 이영호 등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인물만 임명돼왔다.

평방사와 호위사령부가 야전부대를 능가하는 최고 수준의 장비, 무기, 보급물자를 제공받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부대의 위치다.

사령부와 주 병력이 자리하는 사동구역과 룡성구역은 각각 평양의 동남쪽과 동북쪽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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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위성사진. 빨간색 네모 안의 지역이 주요 권력기관이

 밀집한 모란봉구역과 중구역이다.

 

 

한미연합군이 유사시 가장 먼저 공격로로 활용할 수 있는 개성-평양 고속도로나 서해와 곧바로 이어지는 남포-평양 고속도로와는 정반대 지역에 주력을 배치해둔 것.

외부 공격이 아니라 후방부대의 쿠데타 시도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위치다.

 

남포 이북지역 서해안 일대를 관할하는 3군단을 보자.

유사시 대규모 해상침투를 막아낼 핵심부대지만, 병력은 4개 여단 3만 명 내외에 불과하다.

상당수 전문가는 이 또한 3군단이 평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야전군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코앞에 자리한 이 부대가 쿠데타에 가담할 경우 막아내기 어려운 까닭에 소규모 병력만 배치했다는 분석이다.

평양 인근에는 평방사를 제외하고는 아예 대규모 병력을 두지 않는다는 원칙이 서 있는 셈이다.

 

 

편제 또한 마찬가지다.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군은 지상군의 4~5개 군단을 묶어 2개의 집단군(army)으로 편성했다.

최고사령관이 2개 집단군 사령관과 사령부를 통제하고, 군단급이나 특수부대 등 하위 무력부대는 집단군 사령부가 관리하는 형태.

그러나 이들 하위 무력부대를 당 중앙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구조가 쿠데타 가능성을 높인다는 우려가 나오자, 김일성은 집단군을 규모가 작은 10여 개 군단급으로 쪼개고 이들을 당 중앙이 직접 통제하는 구조로 재편성했다.

이들 부대를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쿠데타를 방지하려는 것으로, 이러한 형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공산국가 군대 특유의 조밀한 내부 감시체계가 쿠데타 계획의 보안유지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북한군 장교단은 조직상 정치·군사·보위 지휘관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 총 정치국, 총 참모부, 보위사령부에 소속된 이들은 일선 대대급 부대에서까지 서로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대규모 부대의 이동명령을 내리려면 해당 부대의 정치·군사·보위 지휘관 세 명이 모두 참여해야 가능한 구조.

예컨대 사단급 부대가 은밀히 이동하려면 사단 사령부로부터 예하 64개 중대에까지 빼곡히 배치된 250여 명 정치·보위군관의 감시의 눈을 사전에 포섭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 누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나

 

한눈에 보기에도 이러한 제약 조건을 모두 뚫고 북한군 내부의 특정 세력이 김정은의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따져봐야 할 대목은 최근 15년여 사이 북한에서 벌어진 갖가지 변화가 이러한 제약을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량기근사태 이후 벌어진 외화벌이가 군 조직의 특성을 이완시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살펴봐야 할 대목은누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냐는 점이다.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은 평방사나 호위사령부, 보위사령부 등 원래는 반()쿠데타 세력으로 설계한 부대가 거사에 나서는 경우다.

1980 5·17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상황을 주도했던 것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최고지도자와 인척관계에 있거나 오랜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물만 사령관에 임명하는 이들 부대의 쿠데타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중앙권력과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 있는 것은 지리적으로 평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후방지역 부대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역부대를 외화벌이에 동원하면서 이들이 일종의 토호세력으로 전락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명령체계에 복종하는 군 조직의 특성보다 스스로 먹고 살기 바쁜 자본주의 기업에 가까운 형태다.

 

평안북도의 8군단, 자강도의 10군단, 함경북도의 9군단 등 북·중 국경지대에 늘어선 부대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15년 이상 지속되면서 이들 지역부대 장교들은돈맛을 알아버린 지 오래라는 것이 해당 부대 출신 탈북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현재 인민군의 중견 장교들은 대부분 임관 무렵부터 이러한 행태에 익숙해진 상태. 이는 군사지휘관뿐 아니라 정치·보위 장교단도 마찬가지다.

이상 행동을 감시해야 할 정치군관이나 보위군관이 소속 기관인 총 정치국이나 보위사령부보다돈줄을 쥔 각급 부대장과 더 많은 이해관계를 맺는 형태로 변질됐다는 것.

단단하기 짝이 없던 쿠데타 감시체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졌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쿠데타가 벌어지려면 해당 부대 고위급 지휘관의 결심이 필수적이다.

김정은 체제의 구축과 함께 인민군 수뇌부를 물갈이하면서 야전경력이나 작전경험이 일천한 50~60대 장령급(장성급)이 총 참모부 등 중앙지휘체계의 주요 직위를 장악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은의 김일성대 졸업논문을 지도했다는 인연으로 2003년 평방사령관에 발탁됐고, 2010년에는 총 참모장에 임명돼 조선인민군의 1인자가 된 이영호가 대표적이다. 현재는 총참모장 직에서 병을 핑계로 한직으로 물러난 있는 실정이다.

 

북한군의 인사변동을 오랜 기간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현재 당중앙 군사위를 장악한 이들정치군인에 대해 진급경쟁에서 밀렸거나 2선으로 좌천된 지역부대 지휘관 상당수가 불만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례도 있다. 1996년 함경북도 청진에 사령부를 둔 6군단을 현재 인민무력부장인 김영춘 당시 신임 군단장이 해체시켜버린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사건은 흔히 군단 정치위원이 주도한 쿠데타 음모가 사전에 발각돼 벌어진 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외화벌이로타락한 현지 지휘관을 한꺼번에 숙청한 것이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분명한 점은 당시 사건을 통해 후방지역 부대 구성원의 경우 최전방이나 평양 인근 부대와 달리 별도의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게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해체된 6군단을 대신해 함경남도에서 이동 배치된 부대가 현재의 9군단이다.

 

 

 

- 8·10·9군단을 주목하는 이유

 

다시 한 걸음 나아가보자. 중동이나 동구권에서 발생한 소요사태의 전례를 감안하면, 후방지역의 8·10·9군단이 독자적으로 쿠데타를 조직할 가능성보다는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소요가 방아쇠 구실을 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론이다.

 

당중앙 군사위에 반감을 품은 상장(중장)급 군단장이나 그에 준하는 지휘관이 지역에 밀착해 일궈놓은 외화벌이 사업 등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상부의 진압 지시를 무시하면서부터 상황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명령 거부에 총 참모부나 당중앙 군사위가 징계와 숙청으로 대응하려 하자 결국 이들이 행동에 나서면서 군사반란의 문이 열린다는 시나리오다.

 

후방 지역부대가 이러한 반란을 일으킬 경우, 개마고원 등 대부분 산악지대로 이뤄진 지리적 특성 탓에 조기에 진압하기가 쉽지 않다. 물리적 거리가 워낙 먼 데다 교통로도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탓에 진압병력을 일거에 투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충성도 높은 부대를 진압군으로 조직하려 해도 평양이나 전방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 더욱이 전투기 등 항공전력까지 상당량 보유한 지역부대의 무장 수준은 진압군을 투입한다고 순식간에 제압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이는 북·중 국경지역 일대에 평양과는 분리된 별도의 무장세력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내전(內戰)으로 치닫게 된다. 진압군과 반란군의 충돌 와중에 인근 지역 주민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하는 난민 시나리오로도 곧바로 연결된다.

 

베이징이 가장 심각하게 염려하는 상황 전개가 바로 이러한 사태임은 주지의 사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2 19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병력 2000여 명을 훈춘(琿春)과 투먼(圖門) 등 북·중 국경지대에 추가 배치했다는 소식도 같은 맥락이다.

 

극단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이러한 내란 상황이 장기화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반란군 지도부 처지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압도적인 자원을 보유한 평양보다 불리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후방지역에서 형성된 군사반란이 최종적으로 평양을 향한 진격이나 군사 쿠데타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진압을 어렵게 만들었던 지리적 격차는 거꾸로 반란군의 평양 진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신의주나 청진 같은 후방지역에서 평양까지는 150~250km 거리로 대규모 부대의 경우 차량을 이용해 아무런 방해 없이 이동한다 해도 12~22시간이 소요된다.

 

5·16군사정변 당시 제6포병단 5개 대대 2200여 명의 병력은 50여 대의 차량으로 아무런 제지 없이 서울 육군본부까지 30km 거리를 2시간 40분에 주파했다. 쿠데타 군의 부대이동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 기습은 불가능해진다.

 

평양의 지형적 특징 역시 매우 불리하다.

주요 권력기관이 밀집한 평양의 중구역과 모란봉구역은 대동강이 둘러싼 호리병 모양이다.

 

쿠데타군의 전차나 대규모 병력이 이 지역을 점령하려면 진입로는 호리병의 목에 해당하는 칠성문 거리, 안상택 거리, 승리 거리뿐으로, 호위사령부와 평방사가 주요 무력을 배치한 지역이 다름 아닌 이들 길목이다. 이를 피해 주요지역에 진입하려면 대동강 5개 다리 가운데 하나를 통과해야 하는데, 소규모 특수전 부대는 진입할 수 있겠지만 전차나 대규모 병력의 진입은 매우 어렵다. 한마디로 평양은 쿠데타군 이 진입하기 어려운 동시에 진압군인 평양방어사령부가 방어하기 쉬운 요새 지형인 것이다.

 

이렇듯 쿠데타군 주력이 평양까지 이동해 주요 지역에 진입하려 애쓰는 동안, 진압군은 평방사와 815기계화 군단, 820전차군단의 예하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평양 내부 부대를 사전에 포섭해 병력과 장비를 일시에 동원하지 못할 경우 쿠데타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쿠데타군의 1차 목표는 평방사 주요 지휘관의 포섭이어야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이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기계화·저격여단이나 공군 등 광범위한 쿠데타 세력을 포섭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들이 평양을 두 방향 이상에서 동시에 공격함으로써 진압군을 한곳에 묶어 두어야만 거사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최종 목표인 당중앙 군사위 무력화를 위해서는 당연히 김정은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고 기밀에 속하는 김정은의 일정이나 활동 계획을 파악할 수 있는 호위사령부 소속 주요 군관의 사전포섭이 필수적이다.

 

또한 휴전선 인근의 4·2·5·1 최정예 전방군단이나 820전차군단, 815·806기계화군단 등이 최후의 순간에 반란군과 진압군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도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다. 최소한 이들이 전방의 위험을 이유로 끝까지 중립을 지키도록 유도하거나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다양한 사전조치가 모두 성공했을 경우를 가정해, 5·16군사정변이나 5·17쿠데타, 남미 국가에서의 군사반란 사례를 참고로 반란군의 평양 진격 시나리오를 구성해보자.

 

사전에 설정한 시간에 기계화 여단을 비롯한 정규사단 무력은 평양 북쪽 모란봉에서 중구역으로 진입하고, 저격여단과 육전여단 등은 남쪽 대동강변 주요 다리를 장악해 평양으로 진입한다. 이들은 주요 점령 대상인 김정은의 집무실, 노동당사 및 3호 청사, 호위사령부 및 호위사령부 탱크여단 본부, 인민 무력부, 국가 안전 보위부, 인민 보안부, 순안공항, 중앙통신사, 로동신문사, 최고인민회의·정무원 청사, 중앙당 고위간부 사택과 아파트를 포위한다. 다음 단계로는 주요 시설에 진입해 요인을 구금하고 이들 시설로 향하는 도로와 교량을 통제한다.

 

이 과정에서 반란군이 신병을 확보해야 할 대상은 김정은을 비롯해 당중앙 군사위원들, 당정치국원들, 당조직지도부 부부장들, 국방위원, 내각부서·국가보위부·사회안전부 책임자 등 당··군 주요 인사를 모두 포괄한다.

사전에 포섭되지 않은 주요 호위군관과 평방사 지휘관, 3군단장까지 제거하거나 무력화하고 나면 일단 군사행동 자체는 사실상 마무리된다.

 

이후 권력을 장악해 나가는 안정화 단계에서는 대내외적으로 쿠데타를 기정사실화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비상정권기구를 수립하고 지지 여론을 확산시키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혁명위원회등의 이름으로 비상기구를 만들어 공포하고,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해 비상사태를 선포한 다음, 금융 동결, 항구와 공항 폐쇄, 조기 통행금지, 법 일부의 효력정지와 새로운 법률의 시행, 대남·대외관계의 일시적 전면 중지 등을 발표하는 수순으로 진행한다.

주민 지지를 얻으려는 공작 차원에서 노동당 주요 인사와 기관이 비상 정권기구의 정당성을 인정하거나 지지하는 선언을 유도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수순으로는 비상정권기구를 당중앙 군사위원회를 대체하는 공식기구로 만들고 쿠데타군을 확대 개편해 평방사를 대신하는 통치무력의 근간으로 삼은 다음, 최종적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김정은을 대신할 인물을 내세워 주변 국가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여기까지 진행해야만 비로소 쿠데타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북한군 내부에서 쿠데타가 발생하는 경우의 시나리오를 꼼꼼히 따져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도 북한 내부 상황과 관련해 극단적인 가정을 거듭해왔지만, 여전히 가장 확률이 낮은 전제조건이 남은 것이다.

 

바로 국외세력의 지원과 개입이다. 먼저 지역 반란군이 평양을 향해 진격하려면 장거리를 주파할 수 있는 유류 등의 군수지원이 필수적이다. 주요 포섭 대상을 설득하려면 비자금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전방 주요 부대가 진압군 측에 합류하는 것을 막으려면 한반도 주변에서 미군이나 한국군이 기동훈련 등의 형태로 적당한 군사적 긴장을 형성해주는 상황도 이들은 절실히 원할 것이다.

 

 

 

- ‘미래에 대한 담보확신 여부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미래에 대한 담보.

주변 국가나 국제기구의 신속한 승인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동조세력을 규합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주체가 중국이든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떤 형식로든 외부세력의 사전약속이 없다면 쿠데타 성립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은밀히 돕는다 해도 쿠데타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이후 북한 권력의 향방이나 새로 들어설 권력 주체의 성향을 장담할 수도 없음을 감안한다면 주변 국가가 쿠데타 지원을 위해 행동에 나설 공산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양한 전제와 가정 위에서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까지 모두 검토하고 나면 결국 현실적으로 북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대치의 군사적 소요는 지역부대의 무장반란 정도라는 게 북한 급변사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결론이다.

김정은의 군부 장악이 어느 수준이냐에 관계없이 정권 자체를 뒤집는 쿠데타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이유다. 중국은 물론 한국과 미국 역시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참고자료 :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이대근, 2003), ‘North Korea: Country Hand book’(U.S. Marine Corps, 1994), ‘시나리오평양 군사쿠데타’(신동아 2006 11월호), ‘North Korean Tactics’(U.S. Army, 2001), 익명을 요청한 전문기관 연구자들과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