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전속 요리사가 보는

북한의 최근 권력 모순

-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

 

 

프리엔케이 이 사람코너에서는 13년간 북한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전속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 첩자 의심을 받자 2001년 북한을 탈출, 일본으로 돌아가 자신의 회고록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으로 김씨 일가의 사생활을 세계에 공개해 주목받는 인물이 됐습니다. 탈북 10여년 뒤 그는 2012 7월 북한의 현 통치자 김정은 초청으로 평양을 다녀온 뒤 김정은에 관한 또 다른 회고록찢어진 약속을 펴냈습니다. 탈북 후에도 지금까지 북에 남겨둔 조선인 아내와 딸과 연락을 계속하고 있다는 후지모토씨는 RFA자유아시아 방송과 인터넷매체인 NK News와 공동으로 마련한 회견에서 자신이 10년간 지켜 본 청소년기의 김정은, 처형된 그의 고모부 장성택과 고모 김경희 그리고 김정은 체제 2인자로 부각되였다 최근 좌천된 최룡해와 북한의 최근 정세 등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소상히 밝혔습니다. 기자 회견은 일본어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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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간주됐던 장성택이 지난 12월 숙청 처형됐습니다. 이 처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후지모토: 북한에선 장성택을 개보다 못한인간쓰레기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만큼 장성택은 김정은의 분노를 샀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장성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장성택이 김정일 장군 밑에서 일할 때 기쁨조 관리를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쁨조 조직망은 북한 전국에 구축돼 있습니다. 기쁨조 조직망은 어린 처녀들을 선발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는데 다듬기만 하면 빛날수 있는 그런 처녀들을 찾아 내는 것이었습니다. 장성택은 이런 조직망을 통해 가창과 율동에 뛰어난 기쁨조가 될 잠재력이 있는 예쁜 처녀들의 이력서를 받았습니다. 어떤 경우, 한 번에 100명의 후보의 이력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장성택은 이력서를 검토한 뒤에 김정일 장군의 면접을 위해 10명 정도를 뽑았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최종면접 일정이 정해집니다. 나도 과거에 기쁨조 면접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평양에 있는 목란관 초대소에서 주로 면접을 하곤 했습니다. 면접 무대에 그 열명이 올라가면 김정일 장군은 각자의 생일 등이 적힌 이력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가수 경력이 있는 여성은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율동 경력자는 별도로 율동 심사를 합니다. 심사원들은 후보자들에게 다리를 들어 보라 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지시를 합니다. 김정일을 따라 나도 대여섯 번 면접장에 가 봤는데 후보자들 중에는 아무리 다듬어도 안 될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질문: 기쁨조 후보들의 나이는 얼마정도 였습니까?

 

후지모토: 보통 15세에서 16세 사이입니다. 기쁨조는 28세에 은퇴하기 대문에 그 정도 어린 나이어야 합니다. 율동을 하는 아가씨들은 그보다 더 빨리 은퇴합니다. 엉덩이와 허리에 무리가 오기 때문입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가무를 잘들 합니다.

 

질문: 장성택이 경제개혁가라는 영상 (이미지)이 있지 않습니까?

 

후지모토: 장성택은 그런 역할 외에도 김정일 장군, 개인의 쾌락을 위한 기쁨조 관리도 맡았습니다. 최종 면접에 선발되는 열 명 중 다수가 지방출신입니다. 평양에 가 보는 것이 처음인 사람도 있습니다. 장성택은 이들이 최종 후보가 되기 전에후보로 선발되면 평양 목란관 무대에 서서 면접을 볼 수 있게 된다면서 향응을 바라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그에겐 그런 특권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연예계 행태와 같은 식입니다. ‘뽑히고 싶으면 나와 하룻밤 자자는 그런 식 말입니다.

 

질문: 마치 연예기획사 관리자처럼 들립니다.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일본에서처럼 말입니다. 그런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런 걸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제일 혐오하는 것입니다.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 말입니다. 그게 바로 김정은이 장성택을 끔찍하게 처형한 이유입니다.

 

질문: 결국 여성관계 때문이었단 말입니까?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김정은은 여성편력을 제일 싫어합니다. 자신의 할아버지 김일성도 그와 비슷했고 아버지 김정일 역시 여성편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걸 보고 자란 김정은은 자신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관행을 근절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나는 바로 이것이 장성택 처형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장성택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제일 혐오하는 짓, 그러니까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김정은은 도저히 이를 용서할 수 없었고 그래서 자신의 후견인이자 보호자인 장성택을 처형한 것입니다. 장성택을 즉각 잊어버리기 위해 재판이 끝나자마자 처형한 것입니다. 기관총 90발을 쏴댔습니다. 90발까지 쏠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일본에서는 총살형을 할 때 총살집행자 다섯명의 총에 3발만 실탄을 장전하고 나머지는 공포탄을 넣습니다. 머리와 심장을 겨누고 발사하면 그걸로 사형집행이 끝나는데 김정은은 기관총 90발을 쏘게하고 그 뒤에 화염방사기로 태운 것입니다. 얼마나 격분했는지...

 

질문: 홍콩의 한 신문은 장성택이 굶주린 개들한테 뜯겨 죽었다고 썼습니다.

 

후지모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의 격분을 더 잘 증빙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중요한 점은 김정은은 장성택을 공화국에서 제거하길 바랬습니다. 장성택의 족적을 없애길 바랬습니다. 그게 요점입니다.

 

질문: 후지모토씨는 회고록에서 장성택이야말로 김정일의 측근으로 김정일을 보좌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은 김정은 체제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이었던 장성택을 일거에 제거한 것은 정말 대담한 결정이 아니었겠습니까?

 

후지모토: 그만큼 김정은이 격분했다는 얘기입니다.

 

질문: 당신 책에서 장성택은 매우 근면한 사람이었고 가끔 김정일 장군과 마찰이 있었다고 썼습니다.

 

후지모토: 그것과 이번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쿠데타 운운하지만 전혀 상관 없는 일입니다. 장성택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다 해서 뭘하겠다는 겁니까? 그냥 김정은 뒤에서 후견인 노릇하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공화국전복 혐의는 처형하기 위한 빌미일 뿐입니다. 북하에서 반역이니 대역적 같은 혐의는 마약 밀매범에게도 붙이는 죄목입니다. 처형의 명분으로 필요한 죄목이었을 뿐입니다.

 

질문: 김정일의 정통성이나 권위를 굳히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후지모토: 그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여성편력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근래 남한쪽에서는 다른 이유들이 보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설주와의 염문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합니다. 장성택과 이설주의 관계설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질문: 한국의 국정원 분석에 따르면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의 숙청과 처형이 광산사업권에 대한 알력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후지모토: 정치적인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질문: 장성택의 부하였던 최룡해가 최근 김정은의 신임을 받아 뜨고 있습니다. 그런 최룡해가 장성택을 밀어내기 위해 그랬다는 설도 있습니다.

 

후지모토: 이것 역시 오도된 것입니다. 장성택과 최룡해가 서로 싸운다는 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장성택은 최룡해의 목숨을 구해줬습니다. 1988년에서 1989년까지 최룡해는 볼링장을 지으면서 조총련으로부터 큰 돈을 받았습니다. 뇌물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10만달러에서 15만달러를 받아 챙겼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1988년 당시에 고위간부를 막론하고 부패공직자 척결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최룡해가 걸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룡해의 아버지는 빨치산 1세대 영웅입니다. 당시에 최룡해가 자기 아버지 무덤에 오줌을 쌌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최룡해는 추방당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 최룡해의 추방령은 엄중한 처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추방 당하면 먹을 것도 분배받지 못합니다. 생존을 위해 생쥐 두더쥐 뱀도 잡아 먹어야 합니다.

 

질문: 추방당했을 때 산간지방으로 쫓겨간 것입니까?

 

후지모토: 그랬을 것입니다. 내 책에도 썼지만 당시 장성택은 최룡해를 반드시 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4년인가 5년만에 최룡해는 풀려났습니다. 장성택이 김정일에게 손을 쓴 것이 틀림없습니다.

 

질문: 최룡해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후지모토: 연회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질문: 충신입니까?

 

후지모토: 물론입니다. 매우 충성도가 높습니다. 대학생 때는 장성택과 최룡해 둘 다, 김경희에게 눈독을 들였습니다. 최룡해가 장성택과 비슷한 연배인데 아마 장성택보다는 약간 아래일 것입니다. 아마도 나보다 한 살 어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64세 정도.

 

질문: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사히 신문이 최근 (1 9) 김경희가 로씨아의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보다 앞서 한국의 조선일보는 김경희가 자살했을 수도 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남편 장성택이 처형된 뒤에 김경희가 자살을 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후지모토: 살아있는 사람을 그렇게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김경희가 로씨아에 있었다는 말입니까?

 

질문: 지병으로 9월부터 10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성택이 처형당하기 전의 일입니다. 김경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후지모토: 김경희는 알콜중독자였습니다. 몸은 망가졌습니다. ‘토와 닛포로부터 어제 (1 8)김경희에 대한 전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는 만일 그녀가 죽었다면 아마도 자살일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장성택의 처형여부의 찬반에 직면해 김경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난 그녀가 심리적으로 큰 압박으로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질문: 당신 책에서는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을 부를 때 존댓말이나 공손한 호칭을 쓰지 않곤 했다고 썼습니다.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김경희가 술이 취하면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존칭을 쓰고 안쓰고는 남편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두 사람 결혼생활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됐습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장성택의 또 다른 임무는 어린 처녀들을 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성택은 예쁜 처녀한테는 약했습니다. 장성택이 원하면 그 처녀들과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질문: 김경희가 그런 점에 대해 격분하지는 않았습니까?

 

후지모토: 왜 격분합니까? 어린아이들도 아닌데. 김경희는 자신이 더 이상 장성택에게 연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언제나 술을 마셔댔으니까요.

 

질문: 앞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이 그의 여성편력 때문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것인데요, 장성택이 여자를 밝혔다는 건 이미 과거에도 잘 알려진 얘기 아닙니까? 어째서 그게 새삼스럽게 문제가 된 겁니까?

 

후지모토: 그런 소문은 노동당 중앙위 간부들에게 퍼졌었죠. 그 당시에는 김정은이 아직 어렸을 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여성 편력과 같은 비도덕적인 행태가 지탄을 받습니다. 김정은의 분노를 산 것이죠.

 

 

질문: 장성택의 처형이 김정은의 형 정철과 여동생 여정과의 권력 싸움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까?

 

후지모토: 관계가 없습니다. 김정철은 그런 일에 관여돼 있지 않습니다.

 

질문: 후지모토씨가 회고록에서는 김정철을 계집애같다고 썼습니다.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내가 집필한 책들 중 한 책에서 그렇게 썼습니다.

 

질문: 김정일의 후계자가 정철이 아니라 정은으로 선택된 건 어떤 배경입니까?

 

후지모토: 김정일은 형제들이 권력다툼을 하지 못하도록 작정했습니다. 내 책에서 쓴 대로 나는 김정은과 특별열차를 타고가는 중에 다섯시간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내가 추정컨대 그보다 일주일쯤 앞서 김정일 위원장과 아내 고영희는 원산초대소에서 정철과 정은 두 아들을 불러놓은 다음, 형 정철에게 물어본 것 같습니다. 후계자가 되고 싶은가고요. 정철은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의 부모는그러면 정은이를 후계자로 앉히겠는데 그래도 괜찮겠는가고 물었겠죠. 그에 대해 정철이는 좋다고 대답을 한 것이고요. 아들들이 권력투쟁을 하지 않도록 미리 못을 박아논 것이죠.

 

질문: 2001년 후지모토씨가 탈출하기 전에 그렇게 정해진 것입니까?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내가 탈출하기 전의 일입니다. 그런 대화가 있은 뒤 열차에서 정은이가 내가 있는 칸으로 들어왔는데 그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은은 보통 나한테 오면후지모토, 담배하면서 담배를 달라곤 했었지만 그날은 담배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정은 장군님 무슨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죠. 하지만 김정은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어도 못했겠죠. 김정일의 후계자가 그 시점에서 공식 발표된 건 아니었지만 형 정철이 아닌 동생인 자기가 후계자가 된다는 사실을 정은이가 알게 된 것입니다. 김정일은 아들들이 아직 어린 나이일 때 자신의 후계자를 미리 알린 것은 나중에 권력투쟁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죠. 정철이는 나중에 말을 바꿔, 자신의 분파를 만들어 권력을 탈취할 그런 인물이 못됩니다.

 

질문: 김정은이 7살때부터 18살때까지 성장과정을 옆에서 봐왔을텐데요 김정은의 주목할만한 색다른 성격이 있었습니까?

 

후지모토: 김정은이 아마 7살 생일을 막 지난 때였을 겁니다. 고위 간부들도 김정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신창초대소에서 간부들의 점심이 끝난 뒤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뒤늦게 아들들을 데리고 나타났죠. 둘다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정은이가 7, 정철이가 8살이었습니다. 간부들이 줄을 서서 이 아이들과 악수를 하나하나 했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정철과 악수하면서 손을 조금 쥐어줬더니 정철도 내 손을 쥐어줬습니다. 그 다음 정은이 앞으로 갔는데 정은이는 나를 쏘아보며이 친구가 바로 일본 제국주의 쓰레기이군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철이는 나한테후지모토 씨라며 존칭을 썼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은이는 나를 부를 때 존칭을 쓰지않고 이름만 불렀습니다.

 

질문: 후지모토씨는 그 당시 마흔살도 넘었었죠.

 

후지모토: 물론이죠. 그때 김정일 장군이 정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이분이 후지모토씨다.’ 그러니까 정은이는 달갑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내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때 정은이의 눈총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정철이에게 했던 것처럼, 나는 정은이와 악수하면서 손을 조금 쥐어줬습니다. 하지만 정은이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에도 내가 만든 스시를 여러차례 운전사를 시켜 정철, 정은 형제에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스시를 만든 요리사의 이름후지모토를 모를리 없죠.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정은이가 내게 마음을 연 것은 일주일, 열흘 정도 지나서였습니다. 어느날 김정일장군이 불러서 그가 보낸 차를 타고 장군의 저택에 갔던 일이 있습니다. 앞마당에는 고위 간부 10여명이 있었고 고영희와 집사등이 나와 있었습니다. 연을 날리려고 하는데 잘 날지 않는다면서 나보고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보니까, 꼬리가 없는 방패연이었습니다. 일본에도 그런 연이 있는데 꼬리가 없으면 날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이와 테이프 가위 테이프를 달라고 해서 5분만에 꼬리를 만들어 달고 정은이 손에 쥐어줬습니다. 조선어 통역을 통해 바람이 불 때 연을 놓으라고 정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연이 신창초대소 상공에 치솟았습니다.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 봤습니다. 그러자 고영희가 말했습니다. ‘봐라, 정은아. 후지모토씨가 아니었더라면 연을 못 날렸을 거다.’ 그때부터 정은이가 내게 마음을 열어준 것 같습니다. 며칠이 지나 김정일 장군이 내게 자녀들의 놀이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누구 부탁인데 싫다고 하겠습니까? 일본의 놀이를 많이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질문: 여러가지 놀이를 가르쳐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놀이었습니까?

 

후지모토: 일본 팽이 돌리기와 죽마타기도 가르치고 깡통차기도 했습니다.

 

질문: 후지모토씨 책에서는 김정은이 버릇없다고 묘사했습니다. 형 정철이보다 훨씬 사납다고 했고요. 또 어릴적부터 농구를 좋아했다는데 사실입니까?

 

후지모토: 김정은의 키가 164센티미터라고 하지만 나보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김정일 역시 키가 작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보다 크길 바랐습니다. 농구를 하면 키가 클 것으로 생각한 김정일은 원산초대소에 정은이를 위해 농구장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 용 농구골대를 세워줬습니다. 1996년 정은이가 거기서 처음 경기를 했습니다. 1983년에 태어났으니까 당시 13살쯤이었죠. 창성초대소와 원산초대소 팀이 경기를 벌였습니다. 창성초대소 농구단은 초대소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짜였고 원산초대소 팀은 정은이와 경호원들로 구성됐습니다. 정은이가 스위스로 유학을 갈 즈음이었습니다.

 

질문: 김정은의 생일과 관련해 후지모토씨는 책에서 1983 1 8일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공식으로 발표한 건 1982년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80년이란 말도 나옵니다. 태어난 게 1983년이 맞습니까?

 

후지모토: 김정일 자녀들의 생일이 되면 우리는 언제나 생일 카드를 써서 보내야 했습니다. 정철이의 생일은 여정이와 비슷합니다. 9 25일인가 26일입니다. 하루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생일날이 오면 우리는 한꺼번에 생일축하 카드를 쓰곤 했었죠. 정은이의 생일은 1 8일입니다. 매번 생일축하카드를 보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생일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질문: 김정은은 농구를 잘 했습니까?

 

후지모토: 1996년경에는 진짜 초심자였습니다. 어느날 내가 김정은 팀과 다른 팀이 농구경기 심판을 보게 됐는데 당시 김정일 장군이 정은이의 팀이라고 해서 절대로 봐줘서는 안된다고 지시했습니다. 반칙을 하면 경기 규정대로 공정하게 벌칙을 가하라고 했죠. 그때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정은이의 팀이 1점 차이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팀이 반칙을 하는 바람에 상대편 팀에게 두번 자유투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제발 공이 들어가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두번 모두 골대에 들어가면서 정은이 팀이 1점차로 졌습니다. 경기가 끝난뒤에 김정일과 고영희가 경기에 참가한 전원에게 기념품을 하사했습니다. 그런데 정은이의 형 정철이가 내게 와서는네가 호루라기를 부는 바람에 우리팀이 졌어라며 화냈습니다. 그러자 아우 정은이가 와서는반칙을 하면 그렇게 지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형제이지만 둘의 사고방식은 그처럼 달랐습니다. 저는 정은이의 그런 말이 반가왔습니다.

 

질문: 김정일은 개인적으로 농구를 국가 경기 종목으로 위상을 높이고 공장이나 기업소 등 곳곳에 농구장을 세우게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후지모토: 적어도 모든 초대소에는 농구장이 있습니다. 신창초대소에만 없었지 나머지 초대소에는 모두 있었습니다. 일반 인민들은 체육관 같은 곳에서 농구 경기를 합니다. 공장 일꾼들이 농구장에 모여 농구를 배우기도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정말 농구를 좋아합니다.

 

질문: 김정은의 영웅 데니스 로드만에 대한 질문입니다. 로드만이 북한을 방문했는데 어떤 배경이 있습니까?

 

후지모토: 1998년 내 딸 생일에 맞춰 일본을 가게 됐습니다. 당시 김정일 장군에게 일본을 가면 스시 재료를 사오면서 농구경기 규칙에 관한 책도 가져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농구 심판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돌아올 때 농구규칙 책을 갖고 와서 보였더니 모두 웃더라고요. 알고 보니 북한의 국가심판들이 정은이 농구경기의 심판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팀들의 경기도 있었는데 경기장은 미국 프로농구와 같았습니다.

 

질문: 당시 김정은은 로드만의 팬이었습니까?

 

후지모토: 정은이는 항상 로드만이 선수시절 입던 셔츠 번호 10번이 적힌 셔츠를 착용했습니다. 마이클 조단의 셔츠 번호 26번이 달린 셔츠도 입곤했습니다.

 

질문: 김정은은 사춘기때부터 술과 담배를 했습니까?

 

후지모토: . 그렇습니다.

 

질문: 김정은이 초대소들을 다니면서 일반 주민들이 굶주린 모습을 봤을 것 같은데요, 자신의 삶과 가난한 주민들 생활 간의 격차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후지모토: 열차 안에서 다섯시간동안 대화할 때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가 있었습니다. 정은이는 유럽과 일본을 여행하면서 대형식품점 슈퍼마켓과 대형백화점들을 둘러 봤습니다. 일본에서는 디즈니랜드에도 가봤죠. 아주 어릴때부터 외국의 풍성한 사회를 모두 봐왔습니다. 근데 북한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어릴때는 몰랐겠지만 커가면서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죠. 당시 김정은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후지모토, 우리 북한도 중국의 개혁을 본따야해.’ 그때 나는 김정은이 개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북한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죠.

 

질문: 김정은이 일본 디즈니랜드에는 몇번이나 갔었나요?

 

후지모토: 두 번입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요즘 북한에 유원지를 건설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 스위스 유학으로 김정은의 시야가 넓혀졌습니까?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유학 전과 그 이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질문: 스위스 유학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하던가요?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든지 아니면.

 

후지모토: 유학생 때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 김정은이 7살에서 18살때와 지금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후지모토: 2012년 오랜만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다시 봤습니다. 후계자가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북한에 대해 신경쓰고 있는 것으로 느꼈습니다.

 

질문: 당시 평양에 갔을 때 평양 시민을 봤을텐데 김정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가요?

 

후지모토: 계속해서 찬양하는 거죠. 그가 후계자가 된 걸 모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모부를 그렇게 끔찍하게 처형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북한당국에서는 고모부를 처형하는데 기관총 90발을 쏴댔다고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처형했다고만 발표했죠.

 

질문: 북한 인민들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최적의 인물이었다고 믿었을까요? 인민들에게는 당시 김정은이 갑자기 출현한 것 아닙니까? 그냥 김씨 혈통을 잇는 후계자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요?

 

후지모토: 물론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기업체와 마찬가지겠죠. 업주 가족이 대대로 사장직을 독점하는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왜 밖에서 능력있는 사람을 불러오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질문: 사람들은 김정은의 후계자 수업기간이 짧았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후지모토씨 말에 따르면 2001년부터 실제 김정은의 후계자 준비가 시작됐다는 말인데, 그 후 김정은이 지도력에 대한 의식이 있었습니까?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이 시점 이후가 김정은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의 혈족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형 정철과 여동생 여정 등 셋밖에 없습니다. 셋이서 김씨 일가를 앞으로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장성택도 죽었습니다. 최룡해가 남아 있으니 그나마 버틸 수는 있겠죠. 장성택과 최룡해가 있어서 지금까지 지도부 고위 간부들을 감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룡해 하나만 남았으니 통제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권력투쟁이 생길 겁니다. 군부를 통제해야 하는데 당 중앙위는 무기가 없습니다. 펜대만 굴리는 기관이죠. 하지만 군부는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가 이길지는 뻔합니다.

 

질문: 후지모토 씨는 북한에 조선인 처와 딸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해도 됩니까?

 

후지모토: 겁나죠.

 

질문: 쿠데타 얘기를 하는 것인데 김정은이 격분하지 않을 까요?

 

후지모토: 김정은은 어린 시절, 내게후지모토, 너 쿠데타 모의하냐고 농담하곤 했죠. 사실 김정은이 걱정됩니다.

 

질문: 북한의 체제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지모토: 한국은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 공격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질문: 북한이 그런 포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겁니까?

 

후지모토: 연평도 포격사건때 나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집에 돌아가 김정일장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미 해군 항공모함 조시워싱턴 호가 북쪽 해역으로 항진 중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장군님, 조지워싱턴함이 연평해역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미국 항모에 한 발이라도 사격을 해선 안됩니다. 미국은 그걸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북한이 가격하는 동시에 전면 전쟁이 나는 겁니다. 한 발 물러서서 생각을 하십시오.’라고.

 

질문: 김정일 장군에게 그런 편지를 보내는 게 두렵지 않았습니까?

 

후지모토: 내가 북쪽에 쓰는 편지는 잘 도착합니다. 2012년 여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거기 홍보담당 간부가 내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내가 쓰는 서한을 그쪽 간부들이 모두 읽어본다고 했습니다.

 

질문: 그러니까 2001년 탈북한 뒤에 편지를 썼다는 말이죠?

 

후지모토: 그렇습니다. 2001년 이후 다섯차례 편지를 북한에 보냈습니다.

 

질문: 북한에 보낸다는 편지는 어떻게 전달이 되는 겁니까?

 

후지모토: 비밀입니다.

 

질문: 가기는 가는 겁니까?

 

후지모토: 물론이죠. 내가 쓰는 편지는 북쪽에 전달됩니다.

 

질문: 그러니까 그런 편지를 북한에 보내곤 해서 2012년 여름에 방북 초청을 받았다는 얘기네요. 장군님에게 맹종하는 부류와는 다르게 후지모토씨는 자신만의 색다른 시각을 전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후지모토씨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인물로 믿었습니까?

 

후지모토: 내가 북한에 초청을 받아 들어가기로 결정했을 때 일본 정부는 나를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내가 평양을 다녀 오고 나서야 일본 정부는 내 진가를 인식했습니다. 후지모토가 김정은을 만날 수 있는 인물이란 걸 알게된 거죠. 마츠모토 외상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왜 진작 나한테 북에 전달할 서한이라도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나를 중재자로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외무성이 반대했습니다. 멍청한 일이었죠. 외무성은 나를 통한 이중적인 대북외교가 마음에 걸렸던 겁니다. 하지만 만일 내게 일본정부의 공식 서한을 주었더라면 김정은은 그 서한을 분명 수령했을 겁니다. 김정은은 그런 식으로라도 일본이 접근하는 걸 원했을 겁니다. 난 북한방문을 끝내고 8 4일 귀국했습니다. 김정은에게는 9 1일 다시 평양에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질문: 그럼 김정은은 그날 후지모토씨가 다시 평양을 방문하게 될 걸로 기대했었겠네요?

 

후지모토: 그렇죠. 일본에 귀국하자 납치문제담당 마쓰바라 장관이 나한테 연락을 해 왔습니다. 9 1일이 닥아오는 시점이었는데 마쓰바라 장관은 나한테 1주일만 방북을 연기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거절했습니다. 왜냐면 김정은에게 9 1일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마쓰바라 장관은 일본 국회가 휴회중이라서 노다 총리가 김정은에게 친필 서한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식으로 장관이 간곡하게 요청을 하는 바람에 거절할 수가 없어 방북을 일주일 미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 장관을 만났는데 그는 빈손이었습니다. 편지나 서류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옆에 부하가 같이 있었는데 내게 계속해 사과했습니다. 노다 총리가 서한을 작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엄청 분노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일주일이나 방북을 연기했는데 이제 와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나몰라라 할 수 있냐고요.

 

질문: 결국 노다 총리의 책임인가요?

 

후지모토: 외무성의 책임이지요. 하지만 도대체 외무성에 굴복하는 총리가 어디 있습니까? 나라 운영을 외무성이 한답니까?

 

질문: 일본 정치인들은 왜 위험을 감수하지 않습니까? 고이즈미 전 총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습니까?

 

후지모토: 그 양반들은 위험한 일을 하려하지 않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평양을 방문할 때 일본항공기로 직접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엄청난 현찰을 갖고 갔죠. 만일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많은 현찰에 대해 중국 당국이 캐묻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평양 직행을 한 겁니다.

 

질문: 김정은은 남한 한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후지모토: 물론이죠. 남쪽 텔레비전에다 영화에다 모든 걸 보고 있으니까요. 남한 외에 다른 나라 것도 다 보고 있습니다.

 

질문: 김정은의 처 리설주는 어떻습니까?

 

후지모토: 아름답습니다.

 

질문: 후지모토씨는 북한에 다시 돌아갈 계획이 있습니까? 평양에 가서 라면 식당을 차리는게 꿈이라고 들었습니다. 북측에 연락을 할 건지 아니면 그냥 기다릴 작정인지 궁금합니다.

 

후지모토: 현 상태에서는 북측에 접촉하는 게 어렵습니다. 상황이 진정될 때가지 기다릴 참입니다.

 

 

 

프리엔케이는 RFA전수일 기자와 함께 2001년 탈북하기 전 13년간 북한의 김정일의 전속요리사였으며 2012년 여름 김정은의 초청으로 평양을 다녀온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와의 대담을 총 3회에 걸쳐 나눠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