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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열린 북한 방송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열혈 친북운동권이 됐던 그는 지금은 북한인권운동가다. 하 대표는 최근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2011 9, 글통)를 출판하고 당시 같이 운동했던 386세대들에 대해반미·종북에서 벗어나라 비판하고 있다. 그의 인생을 추적해보면 80년대 이후 한국사회 변화를 읽는 재미가 있다. 바이트는 지난 23일 그를 만났다.

노벨 물리학상의 꿈을 포기하고 친북운동을 하다


하태경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이다. 노벨물리학상을 꿈꾸며 대학에 들어갔지만매일같이 학교에 최루탄이 터지고 선배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운동을 결심했다. 열혈 운동권이 된 그는 1989, 1991년 두 차례 구속됐다. 1 8개월을 산 두 번째 감옥에서 사회주의 소련의 붕괴소식을 들었고 운동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출감 후에도관성으로운동은 계속됐다.

1993
년부터는 문익환 목사와 함께 통일운동을 했다. 당시 통일운동은 남한과 북한이 함께 출범시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주도했다. 그러나 문 목사는 범민련의 이적성을 우려해 새로운 단체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북한은 이를 반대하며문 목사는 안기부 프락치다. 문 목사 노선을 거부하라는 지령을 보내왔다. 이 지령으로 문 목사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문 목사를안기부 프락치로 몰아세웠고, 문 목사는 얼마 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하 대표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북한에 대한 커다란 반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 후 하 대표는 1997년 고려대 국제대학원 국제통상협력학과에 진학한다.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사상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타국의 경제발전을 한국과 비교해 보면서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이승만박정희에 대해서도 재조명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 논문을 쓰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그는 이승만이 1900년대 초 미국을 방문하고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고 한다
.

조선에서 2층짜리 건물도 보기 힘들던 시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본 이승만은 천지개벽의 순간처럼 압도당하지 않았을까?…이승만은 미국에서 선진문명을 보았고 김일성은 중국 대륙과 연해주의 봉건사회를 본거 뿐. 어떤 세상을 말로 듣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북한과 남한의 미래는 이승만과 김일성이라는 두 지도자가 젊었을 때 본 세상이 과연 어떤 세상이었느냐에 따라 그 이후 그들이 만들어냈던 사회가 크게 달라졌던 것이다
.”

북한의 화형제도, 80년 광주나 남한 군사정권의 독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


시장경제에 대한 이념적 신뢰와 수용이 싹트던 당시 북한에서 대규모 기아사태가 발생하고 탈북자가 나오고 있었다. 그는 직접 북한의 실상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북한과 접경지역에 위치한 중국 장춘의 지린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평일에는 공부하고 주말에는 탈북자들을 면담했다. 200여명의 탈북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그를 경악시킨 것은북한에 화형제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탈북자 중에서 특히 몸 파는 여자들을 화형에 처한 적이 있다는 증언이었다. 김정일 독재정권이 행하고 있는 악독한 인권유린은 80년 광주의 전두환이나 남한에서 군사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고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었고 무자비했다.”

그는 그때 북한의 변화를 위해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인생을 바쳐 뭔가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했고 2005년 대북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대북방송의 어두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국민참여 방송이란 컨셉을 세웠다. 라디오남북친구와 같이 일반사람들이 참여해 북한에 직접 보내고 싶은 방송을 제작해 송출하는 것이다
.

광우병집회, 20대 이제 반성해야 한다.


최근 그의 활동은 한국사회 좌파개혁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지난 7월에는 대학 1년 후배인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공개편지를 보냈다. “3대 세습을 인정하는 등 종북에서 빨리 벗어냐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아직도 다수의 386들이반미
반재벌친북 80년대 시대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사회를 불건강하게 만든다고 일갈한다. 천안함과 광우병이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실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다. 찬반을 종합적으로 보고 취사선택해서 결론을 합리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FTA반대’ ‘미국소 수입 반대’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정해 놓고 이를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선동자료만 찾는 것이다. 그건 우파도 마찬가지다. 반북이라는 이념이 절대 우위에 있으니까 거기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게 된다
.”

광우병 집회에 대학생들도 많이 참여했고 그들은 종북주의자들에게 이용되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고 묻자 “20대들이 집단적 오류를 행한 적이 역사에 아주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당장 우리들이 그랬다. 민주주의운동이라는 외형을 가졌지만 북한을 이상사회로 본 친북운동이었다. 20대는 순수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갈구가 강하다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다. 나는 광우병 집회가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젊은이들에게 사회, 공동체가 무엇인지 만끽하게 해준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차분히 당시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화장품만 발라도 광우병에 감염된다는 등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가 돌았고 암묵적으로 이를 인정했다. 그런 자기 행동에 대해 솔직해져야 하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를 가장 멍들게 한 것은 이런 집단비지성이다.”

 

 

어떤 이념도 팩트 앞에 겸손해야

그는이념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런 가치하에 사람들을 묶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이념과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이 저널리즘 정신이라며이념을 부정할 수 있는 건 팩트 밖에 없다. 팩트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
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내 삶의 주인이 되라는 그의 인생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말을 던졌다
.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내가 내께 아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았고, 누군가에 잘 보이기 위해 스팩을 쌓으며 살고 있다. 대학 다닐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훈련해 보는 거다. 스스로 기획하고, 기획이 제대로 실천이 될 수 있을지 조사하고, 구체적인 단계를 세워서 집행하면서 성취를 맛보는 거다. 작은 성취라도 뭔가 이뤄본 사람은내 인생은 내꺼구나’ ‘내가 주도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인생에 자신감이 생긴다. 그때부터 성인이 되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