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시대’ 1년, 무엇이 달라졌나 / ‘2원 지도 체제’로 역할 분담하는 정황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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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북한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만 1년이 되었다. 그동안 후계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과 아울러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등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후계 체제의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다소 안정화되어간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듯한 분위기가 우세하다.

 

김정은의 행적에 대해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매체는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김정은의 행적이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기사 85건에서 김정은이 거명되었고, 이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거나 다소의 변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김정은이 후계자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은 지난해 9월28일 당대표자회 이후이다. 그러나 북한 매체를 통해 김정은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2010년 10월9일자 로동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김정은은 신축된 국립연극극장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 지도를 수행했는데, 로동신문 1면에 김정일과 같은 크기의 사진이 나란히 게재되어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점이 중요한 것은 북한이 공식 후계자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없기 때문이며, 또한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후계자라고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 역시 1980년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화되었다고 보고 있지만, 당 내부적으로 결정된 것은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즉, 김정은 역시 후계자로서의 위상이 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대외적으로 공식화된 것은 맞다. 그러나 당 내부적으로는 이미 이전에 후계자로 결정된 것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2009년 상반기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볼 때, 로동신문 1면에 김정일 위원장과 동일한 크기의 사진이 나란히 게재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이후 김정은에 대한 보도 형태를 보면 거명되는 순서가 첫 번째가 아니었다. 대체로 리영호 총참모장이자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다음으로 호명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과 내각총리 최영림이 언급될 때 김정은의 위치는 네 번째에 해당되었다.

그런데 올해 2월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리영호에 앞서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2월2일까지의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는 기존 방식과 마찬가지로 수행원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리영호-김정은의 순서인 것이 확인되는데, 2월15일자에서부터 첫 번째로 등장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그리고 수식되는 표현은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 일꾼들’이라는 언급과 함께 가장 먼저 김정은의 이름이 나타나는 변화를 보인 것이다.

각종 보도에 김정은 중심 사진도 부쩍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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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과 평양 소재 목란비디오사를 현지 지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은 2월14일자 조선중앙통신에서 중국 공안부장 ‘맹건주’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접견 내용에서 나타난 바 있다. 이 기사에서 후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언급이 처음으로 발견되며, 김정일 생일에 맞추어 선물을 전달하면서 김정은에게도 마찬가지로 선물을 전달했다. 이 기사에서는 ‘조선 혁명의 계승 문제가 빛나게 해결’된 점에 대해 맹건주 공안부장이 축하했다는 내용을 게재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에서 당 내부적으로 이미 2009년쯤 후계자 문제가 결정된 것이지만,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대외적으로 공식화시킨 것을 의미한다. 또 2011년 2월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에 즈음해 북한과 중국 간에 후계자 문제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진 것을 대외적으로 알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북한의 후계 체제는 점차 공식화 및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과 내각 총리 최영림 다음에 호명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김정은은 2인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김정일과 김정은의 행적을 보면 몇 가지 특징적인 사안들이 발견되고 있다. 먼저 자강도 희천 지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4일자 로동신문 보도에서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희천발전소 건설장 참관 기사는 모든 면을 차지했다. 현지 지도 사진만 75장이며, 김정은 중심의 사진이 여섯 장에 이르는 경이로운 형태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형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편집이라 할 수 있는데, 지난 8월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후 로동신문 8월29일자에서 12면 증면 발행되면서 10면에 걸쳐 러시아를 방문한 사진으로 가득 채운 사례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당 선전·선동 사업에서의 일정한 변화가 아닌가 판단되며, 김정은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 로동신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12월21일 기사에서는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 현지 지도 기사가 게재되고, 올 1월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최첨단 돌파전의 선봉에서 내달리고 있는’ 공장이며 이 모범을 적극 따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생일에 앞서 보도된 로동신문 1월7일자 정론 ‘온 세계에 앞서 나가리’에서는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만을 대상으로 CNC(컴퓨터 수치 제어)화의 선두 주자로서의 모범을 강조하고 있다. 또, 지난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를 방문하고 나서 귀국길에 희천발전소를 현지 지도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희천은 김정은 시대의 경제 성장의 상징물이 되고 있으며, 이른바 ‘강성대국’의 초입에서 상징화의 대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의 특징은 외교·군사 분야에서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지난 8월 러시아 방문에 김정은이 수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외교에서의 역할 분담이라는 측면과 아울러 국방위원장 외유 시 내치를 책임진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말 군사적인 측면에서 특징적인 형태를 보인 바 있다. 2010년 11월30일부터 11일간 갑자기 현지 지도 수행을 중단했는데, 이 시기는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이때 김정일 위원장은 군사적 위기 시기임에도 최북단 지역인 함경북도와 량강도 지역으로 현지 지도를 떠났으며, 수행은 김경희·장성택 부부 그리고 김기남·홍석형 비서만을 대동한 채 군 인사모두 배제했다. 이러한 모습은 군사 부문에서는 김정은이 일정 부분 권한을 행사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를 낳게 한다.

이렇듯 지난 1년간 김정은은 후계자로서 위상이 공고해지고 있고, 북한의 매체는 ‘계승 문제’의 해결을 공식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점차 통치 구조의 핵심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