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달라도 너무 다른 김정은

 

김영환 - 준비하는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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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평양에서 13살 때(대동강남자고등중학교 1학년) 처음으로인민의 위대한 수령김일성이 등장하는 1호 행사에 참석하였다. 1980 10 10,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 기념 평양시 100만 군중시위 조선소년단 소고대(작은 북을 북채로 치며 열을 맞추어 행진하는 1000명 학생그룹)에 있었다. 


환한 얼굴로 주석단에 뒷짐 쥐고 서있는 김일성·김정일을 정중히 우러르며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그 앞을 통과하는 5~7분의영광의 시각을 위해 학교수업을 전폐하고 4개월간 하루 10시간 정도의 강도 높은 연습훈련을 했었다.


태어나 28년간 평양에 살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는 김일성이 만든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로 자기 운명을 자기의 힘으로 개척한다는 주체사상이지만 성인이 되며 의구심이 들었다. “종신토록 수령의 지시대로 사는 인민에게 주체사상은 모순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참고로 북한사회는 최고지도자인 수령의 권위가 절대 신격화로 보장되고 수령을 비판 음해하는 사소한 요소도 발본색원하여 뿌리 채 없애버리는 무서운 독재집단이다. 그런 비정상의 사회가 70여 년간 3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과거 김일성을 만난 몇 인물 중에는 도서강철서신의 저자인 김영환 준비하는미래 대표도 있다. 현재는 통일교육강사, 북한인권운동가로 왕성한 활동 중에 있으며 얼마 전 서울의 모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63 4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하회마을이 있는 유명한 고장이다. 부친은 자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였고 모친은 평범한 주부였다. 형제는 3 1녀로 내가 장남이다.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1979년부터 서울에서 마포고등학교를 다녔다.

 

- 대학생활을 소개해준다면...


198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면서 교내 동아리인고전연구회’(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공부모임)에 가입하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85년 서울대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과 관련해 대학제적 및 지명수배자가 되어 도피생활을 하였다. 1986년부터 88년까지 서울구치소, 성동구치소, 홍성교도소 등에 수감되었다. 1991 3월 서울대학교 4학년으로 복학하였고 이듬해에 졸업하였다.

 

- 주체사상을 신봉한 계기가 뭔가?


마르크스와 레닌주의를 공부해보니 우리의 통일 및 민족문제에 관한 명쾌한 대답은 전혀 없었다. 하여 눈을 돌린 것이 북한의 주체사상이다. 통일문제를 외세의 관섭 없이 우리민족끼리 주체적 입장에서 이룰 수 있다는 대목이 끌렸다. 

 

- 80년대 학생운동의 대부였다.


1983년 서울에서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하여 중앙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86년 대학가와 노동계에 <강철서신>책자를 유포시켰다. 그 안에는수령론’ ‘품성론등의 주제를 담은 주체사상의 정당성을 주장한 내용도 일부 있었다. 이후 89년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서 멤버로 활동하였다. 당시 학생운동의 주요 목표는 전두환 정권퇴진, 주한미군철수, 자주적 남북교류 등이었다.

 

-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났다. 


1991 5 17일 깊은 밤, 김포 강화도 건평리 갯벌에서 북한공작원 2명과 잠수정에 올라탔다. 잠수정에 4명의 요원이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 경 해주에 도착하여 사회문화부(대남연락부: 노동당직속 남파간첩 전담기관) 부부장, 과장 등의 마중을 받았다. 그날 아침 헬기로 평양으로 이동했고 안가에 머물렀다.

 

-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대략 일주일 후 관계자와 함께 평양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평안남도 향산군에 위치한 묘향산호텔로 이동했다. 거기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오전 10시 경, 1호 초대소(김일성 별장)로 갔고 김일성이 두 팔을 벌리며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김영환 선생!”하는 그의 발언에안녕하십니까? 주석님!”하고 답례했다.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배석자 없이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었다.

 

- 무슨 얘기를 주로 했나?


김일성은 전날 평양을 방문한 손원태 재미교포를 접견한 소리를 시작으로 자기 유년시절 때 도움을 받은 손정도 목사 소리를 했다. 과거 항일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고생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에도 인간의 고뇌가 어렸더라. 점심식탁에 오른 언감자국수를 보며 김일성의 항일소리는 계속되었다.

 

- 김일성에게 실망한 부분이 어디인가?


다음날도 김일성의 제안으로 2시간 정도 독대를 했다. 나는 그에게 주체사상의 철학적인 영역을 질문했고 그는 정치적인 영역으로 대답했다. 다시 말해 동문서답 격이다. 이때!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제대로 모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김일성 접견 전 이틀간 북한사회과학원 주체사상연구원 학자들과 대담을 가졌는데 그때도 실망을 느꼈다. 소련 붕괴에 비판만 했지 대안은 못 찾더라.

 

- 사망하기 3년 전의 김일성은 건강해 보였나?

 

이틀간 4시간 동안 독대하면서, 거기에 2시간의 식사시간까지 합쳐 모두 6시간의 만남에서 주로 김일성이 많은 발언을 하였다. 그것만 봐도 기력이 훨씬 넘쳐보였다. 80세 노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운이 왕성한 모습이었다. 

 

- 북한에서 체류일정과 귀경은?

 

김일성 접견을 위해 묘향산에 2일간 있은 것을 빼면 모두 평양에 있었다. 김일성생가, 주체사상탑, 개선문, 혁명열사릉 등을 참관했다. 그 유명한 옥류관에서 평양냉면도 먹었는데 내 입맛에는 별로더라. 15일간의 북한체류를 마치고 남포항에서 어선으로 위장한 북한공작선을 타고 서귀포 남쪽 110km 해상에 와서 보트로 갈아타고 제주도에 상륙했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한 이유가 있나?

 

1990년대 초반이후 남한사회에 특이한 풍경이 생겼다. 북한사회를 뛰쳐나온 수용소출신의 탈북민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강철환, 안 혁 등이 대표적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고 받은 실망이 50점이라면 서울에서 강철환, 안 혁의 기자회견을 보고 받은 충격은 100점 만점이다.

 

- 김일성과 김정은은 어떻게 다르고 같은가?

 

북한당국에서 선전하는 과거 김일성의 동정과 현재 김정은의 동정은 크게 다르다. 항일운동으로 고생도 한 김일성은 보통 인민들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얼굴을 맞대고 생활한 자료사진이 다소 있다. 김정은에게서 이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점이 있다면 비슷한 얼굴모습과 제스처(신체동작)뿐이다. 현지시찰 방식은 100% 부친 김정일을 닮고 따라하는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은의 통치방식을 어떻게 보나?


그가 집권한지 7년이 되어온다. 인민들에게 장마당이용, 임금상승, 임대업허가 등으로 어느 정도 안착된 경제적 환경을 조성하였다. 반면에 고모부 처형과 친형 독살 등으로 간부들에게 불안한 심리를 안겨준 것은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만큼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껴안은 김정은이라고 보면 된다. 

 

- 정부가 북한에 군사 및 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유쾌한 제안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핵개발을 완성하고 미국이나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북한의 핵개발은 체제운명과 직결되었다. 허나 휴전선 대북방송 및 전단 살포중단은 눈에 가시처럼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문제일 것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북한이 우리 정부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 정부의 대북정책에 조언을 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다소 바뀌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27년 전 통일을 이룩한 서독정부의 대동독정책에서 일부를 배울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솔선수범으로 가능한 바뀌지 않는 통일정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 준비하는미래는 어떤 단체인가?

 

2016년 초에 설립한 비영리 연구단체이다. 우선 북한의 해방과 통일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며 요즘사회의 대두인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시대적 변화를 모색한다. 사무실은 서울 모처에 있으며 많은 연구자, 전문가들이 협업형식으로 일하고 있다. 주로 세미나, 학술토론회, 전시회, 기자회견 등을 한다.


 

취재 - 림일 탈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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