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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 (소설가/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전 경향신문 민족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

 

언론사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오랫동안 중국 내 탈북민들과 북한 내 주민들의 생활상을 취재해왔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많다.

 

그 중 하나. 두만강 변 숭선이라는 마을뒷산으로 탈북민 부부를 찾아갔다. 현지주민들의 겨울 사냥용 임시숙소인 땅굴 속에서 부부는 짐승처럼 살고 있었다. 막 아이까지 낳았다. 그런데도 반찬은 부부가 마을 담배 밭에서 일하며 얻어온 간장이 전부였다.

 

습진이 아이의 몸을 빨갛게 뒤덮었다.나는안녕하세요?’라고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과연 그런 평범한 인사말이 가당 키나 한지 하는 생각이 들어 이내 머쓱해졌다. 거기로 나를 데리고 간 중국 동포 전도원에게당신, 지금까지 뭐했어?’라고 묻고 싶었다.

 

내가 일생에 본 모습 중에 가장 비참한 몰골의 인간이었다. 취재 현장에서 취재원이 위급한 순간에 처했음을 인식했을 때 기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자는 불이 났다고 외치는 자이지 불을 끄는 소방관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만사 제치고 그들을 돕는 데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또 하나의 장면. 어느 해 여름 평양에 갔다가 정방산의 성불사를 탐방했다.

 

정방산에 들어서자 거대한 폭포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무려 80여 미터 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였다.

 

하지만 나는 그 폭포가 이제 막 아래의 못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짝 마른 못에 이제야 물이 차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양수기로 물을 끌어올리는 인공폭포였다.

 

우리 일행 이외에는 부근에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 가동시킨 것이었다.

 

당시 나는 정방산 인근의 사리원에서 아사자가 많이 나왔다는 북한 관영신문들의 보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기가 없고, 양수기가 부족해 농사를 망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신문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한 전기와 양수기를 사용하는 폭포를 단지 남조선의 기자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가동했다니. 안내원은 장군님이 인민의 휴식처를 잘 꾸리라고 해서 그 폭포를 만들었다며 인민을 사랑한다는 장군님을 추켜세웠다.

 

 나는 그런 허장성세 형의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에 치를 떨었다.이방인이 잠시 곁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이럴진대 거기서 삶을 견뎌온 이들은 오죽할까. 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탈북 행렬은 1950년부터 37개월간 치른 한국전쟁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민족이동이다.

 

무려 3만 명이 자신이 태어난 조국과 고향을 등지고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왔다. 그 수는 단지 남한 땅에 성공적으로 발을 디딘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에까지 도착한 난민들의 수는 적어도 남한에까지 온 이들의 열 배는 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 중에는 이미 조국에서 작가로 활동하던 사람이거나 뒤에 작가가 된 사람들이 꽤 있다.

 

고향과 친지를 등진 설움과 그렇게 만든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가 그들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이미 적잖은 작품들이 나왔다.어떤 작품은 해외에서 남한 최고의 작가도 쟁취하지 못한 수십만의 독자를 얻었다. 왜 그럴까? 작품이 세계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다뤘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은 북한 독재정권의 비정함에 떠밀려 국경을 건넌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는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하는 이가 아주 드물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한결같이 한때 총구의 표적이 되어 생사가 경각에 달린 밤길을 걸어 본 적이 있다.

 

탈북 작가들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탈북 작가들은 자신들이 겪은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경험을 증언할 의무가 있다.

 

작가가 창조자라고 하는 말 속에는 따뜻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열어 가려는 창작의지를 문학으로 표현하라는 준엄한 명령이 내포되어 있다.

 

북한 땅에 자유를 심어주기 위해서 탈북 작가는 부단히 그들이 살던 북한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 모순과 그 모순을 일상 속에서 강요하는 독재자에게 저항해야 한다.

 

이생에는 그것밖에 할 일이 없다는 듯이 아멸차게 그래서 북한 주민들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북한 독재자의 연명을 돕는 남한의 사이비 민족주의자들에게 독재자로부터 뒤통수를 얼마나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 겠느냐고 끊임없이 훈계해야 한다.

 

세계 곳곳의 인민들에게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 되찾기에 다 함께 떨쳐 나서자 고 호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