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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정권이 식량의 최후 보루인군량미를 헐었다.

 

3년 남짓한 6·25전쟁을 의식해 3년 치 군량미를 확보해온 북한은 1990년대부터 점차 비축 군량미를 줄이더니 최근 최후의 비상 곳간인 ‘3개월 군량미마저 축내기 시작한 것. 북한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16일 북한이 전쟁물자로 비축한 군량미(일명 2호 창고)를 풀어 올봄 춘궁기를 넘기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군량미를 꺼내 주민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한 시점은 올 3월 초. 중국 접경지역의 북한 주민들은 당시 “3월 초 전시 비상식량이라며 각 가정에 옥수수 15kg씩을 배급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며 주민들을 각종 군사훈련에 내몰자장사도 못하게 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는 불만 여론이 커진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북한이 군량미 창고를 열기 시작한 뒤 최근까지 군량미로 주민들에게 배급을 주고 있다는 정황은 평양 혜산 청진 등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확인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성인에겐 매달 보름치, 부양가족은 열흘 치 식량을 3개월째 주고 있다. 다만 평양엔 5월 초순까지 1인당 현미 500g 3차례 주었을 뿐 아직 보름치는 다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군량미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풀리고 있으며 농촌지역에선 아직 2호 창고를 열지 않은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농장을 끼고 있고 개인 뙈기밭 농사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농촌에 비해 도시의 식량난이 더 심각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 대북소식통은 16초기에는 군량미 창고에서 꺼낸 마대를 그대로 배급소에 실어갔는데 여론이 좋지 않아 지금은 마대는 없애고 식량만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꽁꽁 닫혀 있던 군량미 창고 문을 열고 보니중국 글자가 적힌 옥수수 마대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우리나라 군량미 창고엔 중국 강냉이만 차 있었다고 수군거렸다.

북한은 2호 창고를 지역별로 갖고 있으며 창고마다 비축한 식량의 종류는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쟁에 대비한다면서 3년 치 식량을 쌀로 비축해 왔다. 매년 수확하는 햅쌀을 창고에 넣고 3년 묵은 쌀은 배급으로 푸는 방식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비축 식량의 질은 따지지 않고 양만 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군량미 창고엔 옥수수만 차게 됐다.

다만 지역에 따라 중국에서 지원받은 옥수수를 채워 놓기도 하고 국산 옥수수를 채워 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북 무상지원 식량 규모는 연간 최대 50 t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군량미 창고를 열면 반역죄로 처벌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간부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량미만큼은 절대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상대로이제는 우리가 핵을 가졌기 때문에 전쟁을 몇 달씩 할 필요가 없고 현대전은 며칠 안에 끝나기 때문에 군량미를 많이 보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 사이에서는우리가 2월 핵실험 때 탁구공만 한 핵폭탄을 터뜨리는 데 성공해 이젠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현재 주민들은 군량미 배급이 6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해마다 봄철 춘궁기에 치솟던 식량 가격도 3월 이후 소폭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현재 어느 정도의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경제난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군량미 비축량도 계속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3년 치 비축량이 1년 치로 줄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반년 치로 다시 줄어들었다는 것. 이마저 2006 1차 핵실험 이후 “3개월분이면 된다며 비축량을 또 줄였다고 한다.

 

북한의 1년 소비 식량 규모가 약 400 t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군량미 창고엔 100 t 정도가 비축돼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군량미를 풀면서 상당수 2호 창고는 바닥을 드러냈을 것으로 보인다.

군량미 창고를 연 데 대한 북한 내부의 여론은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들은군량미 창고라도 열어 굶어 죽지 않게 해주니 아버지 때보다 낫다는 평가와벌써 아버지 때 물려준 마지막 곳간을 털어먹고 내년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한탄도 나온다고 전했다.

 

 

 

● 협동농장 토지를 공장 기업소에 분양하기도.

 

 

북한이 올 봄부터 협동농장 토지를 각 공장 기업소에 분양한 뒤 농사를 지어 식량을 해결하도록 했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이 16일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협동농장 토지 중 비옥도가 낮거나 방치된 땅을 해당 지역 공장에 종업원 수에 맞춰 분양한 뒤 파종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위임했다. 비옥한 토지는 농민들이 계속 농사짓도록 했다.

노동자 1인당 분양 면적은 해당 토지에서 예상되는 수확량이 생산자의 1년분 배급량과 맞먹게끔 정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가령 노동자 1인당 1일 표준배급량이 600g일 경우 이 노동자는 1년에 219kg을 배급받게 된다. 이 공장이 지정받은 농장의 1(3.3m²)당 평균 곡물생산량이 1kg이면 해당 공장은 노동자 1인당 약 200평의 토지를 분양받는 것이다.

 

하지만 당국이 예상 수확량을 해당 농장의 비옥한 토지 생산량에 맞추어 책정하는 바람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탈북지식인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공장에서 생산한 양곡을 협동농장 생산량에 포함시키는 대신 해당 공장엔 생산량을 돈으로 환산해 지불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15일 전했다.

이를 미루어볼 때 북한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양곡을 직접 소비하도록 하는 현물 분배 방식과 생산량만큼 돈을 지불하는 현금 분배 방식을 동시에 도입해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장 노동자들에게 돈을 주는 경우 식량은 국가 배급소에서 사게 할 수 있다. 새 정책은 대다수 공장의 가동이 중단돼 할 일이 없는 노동자들을 사실상 농민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6·28 방침을 통해 도입하기로 한 가족단위 경작제도도 시범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올해부터 가족단위 경작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내용은 동아일보가 지난해 6 26일과 9 25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NK지식인연대는가족 구성원 중 농민이 많은 경우는 가족끼리, 농민이 적은 경우는 분조 단위로 농사를 짓게 한다대신 농작물은 국가에서 지정한 것만 심게 한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이 올해엔 가족경작제와 기존 협동농장 시스템을 절충함으로써 가족단위 영농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경우 초래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농업 생산제도를 개혁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By: 주성하 기자의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