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교수, 8천만이 하나되는 언어 통일 이룩하고 싶다

- 전문가들, 역대 남북언어비교 책 중 최고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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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3만 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1990년대 북한의고난의 행군남북이 통일되면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부분은 어떤 것들일까?

 

2005년에 한국에 입국한 전 북한대학교 박노평씨는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전구(電球)를 북한말로불알이라 한다는 거예요. 불알, 날틀(비행기) 이런 게 김일성이 말 다듬기(우리말 순화)를 할 때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진 말이거든요. 북한에서도 전구는 전구 또는전등알이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수(喜壽·78)를 넘긴 노학자는 아직도 열의에 넘쳤다.

 

2005년 탈북한 박노평 씨(78)는 북한 공학 분야 최고 수재들만 모인다는 '김책 공업 종합대학'에서 37년간 교수로 재직한 금속공학 전문가다.

 

그런 그가 뜻밖에도 남북한 언어 비교연구서를 냈다.

최근 출간된평양말·서울말은 박 씨가 10년간 수집한 자료를 모아 2년 넘게 집필한 결과물이다.

 

남북한언어 이질화를 방송이나 신문에서 오히려 부추기고(?)있다고 지적하는 노학자는 이것을 바로잡는 일이 자신이 남한 국민과 정부의 고마움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에 걸쳐 3천여 남북한 언어를 비교해평양말 서울말을 출간한 박씨는 이 책을 통해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이 생기게 된 원인과 그로 인해서 발생, 발전해온 북한 언어의 특성과 실제 사용하고 있는 북한 언어를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

 

책에는 남북이 비교할 수 있는 말이 존재하는 범위 내에서 비교할 말(남과 북이 각각 사용하고 상대방에는 없는 말)이 없는 영역에 까지 이질성의 심도와 폭을 넓혀 전면적으로 분석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약 3,000여 개의 올림말이 비교되어있다.

 

박 씨는 아들이 남한 노래를 몰래 부르다 발각돼 정치범이 된 것을 계기로 가족과 함께 탈북했다. 남한에서 북한의 지위와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었기에 2006년 작은 빌라의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근무시간이 길어 출퇴근이 여의치 않자 평일에는 1(3.3m²) 남짓한 경비실에서 먹고 잤다. 

 

그러던 그가 책을 쓸 결심을 한 것은 오래간만에 찾아간 집에서 들은 부인의 넋두리 때문이었다. “아내가 뉴스를 보면서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다고 투덜대더라고요. 근데 저도 모르겠는 거예요. 쓰는 단어가 전혀 다르니까요. 나와 아내 모두 북한에서 대학 나오고 교원까지 한 지성들인데 우리가 이럴 정도면 다른 탈북민들은 어떻겠나 싶어 그들을 도울 길을 찾자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책을 출간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북분열의 고통은 언어에도 있구나. 남북언어의 이질성의 골은 너무 깊구나. 이 고통을 없애는 일도 통일의 한 고리다라는 깨우침이었습니다. 통일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고, 통일 후에 할 일이 있는데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일은 통일 전부터 시작하여 통일 후에도 장기간 끌고 나가야 할 복잡하고도 거창한 위업입니다. 그때부터 남북언어의 동질성회복을 위해, 탈북민들의 언어에서 고통을 덜어주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좁은 경비실에 컴퓨터를 들였고 자비로 국어사전을 샀다.

그날부터 박 씨는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북한 말과 다른 남한 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남한 말 사전은 쉽게 구했는데 북한의 조선문화어대사전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집에 복사기를 들인 다음 도서관에서 대여한 3000쪽이 넘는 사전을 다 복사했죠. 꼬박 이틀이 걸렸어요.”  

 

쉬는 날이면 전국을 돌아다녔다. 탈북자들을 만나 자료를 수집하고 자문을 하기 위해서다.

 

김일성 종합 대학 어문과 출신 탈북자가 부산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까지 내려간 적도 있어요. 강원도로 이사 갔다는 말에 강원도 탈북자단체 곳곳을 돌며 수소문했는데 결국 한 교회에서 찾았죠.”

 

그 덕분에 박 씨는 북한 말 역사와 사어(死語)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조사를 할수록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은 크게 다가왔다.

 

특히 탈북자들이 남한 말을 모르는 만큼 남한 사람들도 북한 말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통일부 자료에 조차 잘못된 북한 말이 쓰여 있었어요. '먼지'를 북한말로몽당이라고 한다는데 저뿐만 아니라 다른 탈북민들도 처음 듣는 말이에요. 없어진 말이거든요. 거짓말은꽝포라고 소개하던데, 북한에서도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탈북자 한 사람에게 들은 정보나 옛날 문서에 적힌 것을 검증 없이 적용한 거죠.” 박 씨는 개탄했다.

 

어려움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컴퓨터를 몰라 모든 것을 수기로 직접  정리하다가 탈북민을 지원하는 한 교회에서 PC를 주어 그간 수집한 자료를 저장하고 원고지를 모두 버렸는데 입력 작업을 하다가 문서내용이 몽땅 삭제되는 바람에 2년 동안의 노력과 많은 자료들이 물거품이 되는 허탈함을 맛보기도 했다.

 

나이가 많지만 집에서 노는 것도 싫고 현실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더 많은 자료를 수집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파트 경비를 자처했다. 아침이면 일찍 청소를 하고 출근하는 입주민들을 보내고 낮이면 오는 손님을 맞아 안내하고 가는 손님 바래드리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마지막 입주민을 맞이하다 보면 밤 11시가 되고, 퇴근 입주민이 사정에 의해 늦어져 기다리다 보면 새벽1~2시 될 때가 보통이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출근시간 보장이었다. 집에서 근무지까지 지하철로 이동해야 하는데 새벽근무일 때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경비실 한 켠에서 쪽 잠을 자야 했는데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글을 쓰고 일하는 그에게는 한없이 귀중한 휴식의 한때였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기억을 더듬어 내용을 정리 해 나가면서 새로운 자료들을 한순간도 쉼 없이 모아 나갔고 객관성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한 단어의 비교를 위해 수십 명의 탈북민들과 수차례씩 전화 통화하고 또 직접 찾아가 다듬고 완성했다.

 

하지만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씨를 격려하고 후원해준 고마운 사람이 있다. '판문점 트레블 센터' 김봉기사장이다.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안보 관광회사를 운영하는 김사장은 많은 탈북자들과 인연이 닿아있는데 박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김사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심양면의 후원자, 조언자가 되어주었다. 

 

10년여의 작업을 집대성한 그에게는 이제 더 큰 숙제가 남았다.

 

제 전공 분야인 과학기술처럼 전문 분야 용어들을 비교연구하고 싶어요. 통일이 되면 남북이 힘을 합쳐 경제와 과학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하면 안 되잖아요.”

 

박 씨에게언어의 휴전선은 그 어떤 휴전선보다 먼저 걷어 내야 할 숙제다. “말이 통해야 마음이 통합니다. 말의 이질성을 극복하지 않고는 통일의 한 단계도 나아갈 수 없어요. 여기서 제가 받은 도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남은 생을언어의 통일에 헌신할 겁니다.”

 

통일을 위한 작은 밑거름으로 탄생한평양말 서울말탈북민 3만 명과 더불어 8천만이 하나가 되는 그날 남북한 주민이 함께 사용할 통일언어가 세상에 태어났다.

 

 

프리엔케이 -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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