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정치는 미국인의 가치와 욕구를 대변하지 못한다. 주류 정치인 후보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미국 CNN방송과 폭스뉴스는 미국 민주·공화당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경선)를 지켜본 뒤 이같이 전망했다. 실제 아이오와, 뉴햄프셔주 경선은 민주, 공화 양당에서 각각 비주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스타로 만들었다. 미 언론은 경선이 시작되면서 거세게 불고있는 ‘샌더스·트럼프 돌풍’의 배경을 분석하느라 바쁘다. 11일(현지시간)에도 미 언론은 이틀 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아웃사이더인 샌더스 상원의원과 트럼프 후보가 주류 정치인들에게 일격을 가한 파장을 분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의 분노가 기성 정치인에게는 두려움을, 아웃사이더에게는 희망을 제시했다고 진단했다.



◆샌더스·트럼프 돌풍의 진원은 유권자의 분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압승한 샌더스 의원과 트럼프 후보는 기성 질서의 파괴자라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성향은 정반대다. 트럼프 후보의 극우적인 시각과 샌더스 의원의 진보적 가치관은 상충한다. 그럼에도 묘하게 겹치는 지점들이 있다. 이는 아웃사이더 돌풍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이들은 ‘지금의 미국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 질서를 만들어낸 ‘워싱턴 정치’도 배척한다. 두 사람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이유로 다자간 자유무역조약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반대한다. 

CNN은 최근 유권자의 60%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불가능한 것으로 응답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면서 미국인이 느끼고 있는 좌절감을 전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42%는 민주·공화 양당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하고 있다고 여긴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반면 정치인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유권자가 50%에 육박했다.

미국인의 분노와 좌절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커지고 있다. 미국 중산층과 서민들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으며 날로 심화하는 부의 양극화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낳을 정도로 사회문제화했다. ‘정치혁명’과 ‘변화’를 기치로 내건 샌더스 의원이 젊은 층 등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다. 시카고대학 재학 시절부터 진보적 학생운동에 참여한 샌더스는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과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거치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진보적 소신을 꺾지 않았다. 2010년 12월 민주당과 공화당이 타협한 부자 감세 연장 법안이 상원에 상정되자 샌더스는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8시간35분 동안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을 했다. 그는 월가가 대표하는 고소득자 증세 등을 통해 국·공립 대학등록금을 인하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트럼프 후보는 샌더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미국인의 분노와 좌절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잣대로 인종 차별, 종교적 편견 등의 발언을 금기시한 정치권의 불문율을 깨고 백인 중산층과 서민층의 불만을 대변하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히스패닉을 비롯한 소수인종 이민자들 탓이고 미국의 안보가 위태로워진 것은 무슬림 탓이라는 식의 거친 발언을 쏟아내며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의 환호를 받고 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승리를 축하하는 집회에서 샌더스 의원은 “이번 승리는 유권자들이 진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낡아빠진 워싱턴 정치와 잇속만을 차리는 월스트리트에 미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역설했다. 트럼프 후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며 “무역 전쟁에서 중국을 이기고 멕시코와의 국경에는 장벽을 세울 것”이라고 외쳤다. 미 국민을 위해 무역장벽, 국경장벽을 높이 쌓아서 중국 등으로 흘러가고 있는 달러를, 불법 이민자에게 흘러가는 세금을 미 국민에게로 되돌리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은 미국의 주인을 자처하는 백인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경선 상승세 탄 아웃사이더들의 미래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유력 주자는 각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였다. 올 대선은 대통령을 배출한 클린턴가(家)와 부시가의 대결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7∼8개월이 흐른 지금 그런 전망은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 
젭 부시.

샌더스와 트럼프는 두 번째 경선주인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압승한 이후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모닝컨설턴트가 12일 공개한 공화당 주자들의 전국단위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는 44%의 지지율을 기록해 17%에 그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27%포인트 격차로 제쳤다. 뉴햄프셔주 경선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은 6%포인트 상승했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46%의 지지율로 여전히 선두를 달렸지만 샌더스 의원의 지지율이 39%로 상승,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가 7%포인트로 좁혀졌다. 
민주·공화당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각당 대의원의 과반을 확보해야 한다. 올해 대의원 수는 민주당 4763명, 공화당 2472명이다. 민주당은 2382명, 공화당은 1237명 이상 대의원의 지지가 필요하다. 샌더스와 트럼프가 과반 대의원을 확보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다. 보수 선거전략가와 공화당 주류는 극우 이미지로 중도적 유권자에게 ‘비호감’인 트럼프 후보의 지명은 공화당의 자멸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2위 경합 후보들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 4명의 레이스가 여전히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이유다. 승자독식 방식을 채택한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20일)을 거치면서 공화당 경선 구도는 한층 더 단순화할 전망이다. 민주당 샌더스 의원에게는 네바다 경선(20일)이 중요하다. 소수인종이 40%가량 되는 네바다주에서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히스패닉·흑인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게 되면 ‘클린턴 대세론’은 사라지게 된다.(세계일보)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