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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마지막 인민군 원수인 리을설의 마지막 길을 최고의 예우 속에서 마무리했다.

 

북한은 리을설의 장례식을 ‘5일 국장으로 치르고 평양에서 영결식을 끝낸 뒤 대성산 혁명열사릉으로 이동할 때에는 승용차가 아닌 장갑차를 운구차로 활용하는 등 파격을 보였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직접 빈소를 조문하고 영결식에 참석한데 이어 리을설이 혁명열사릉에 묻힐 때에는 허리를 숙인 채 두 손으로 흙을 덮기까지 했다.


북한에서 군 원로 장례식에 장갑차가 동원된 것은 1995 2월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과 2010 11월 조명록 전 군 총정치국장에 이어 리을설 원수가 세 번째다.

 

조명록 장례식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 제1위원장을 대동하고 빈소만을 방문한데 비해 김 제1위원장은 리을설 장례식 때는 빈소와 영결식에 참가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차이다.

 

리을설의 신분이 원수였던 반면 조명록이 차수였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제1위원장은 국가장의위원장을 맡아 전반적인 장례를 직접 주재했다.

 

지난 8일에는 리을설의 장례식 빈소를 찾아 침통한 표정을 보이는가하면 허리를 깊이 숙여 예우를 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북한의최고존엄인 김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나 동상 외 다른 인물에게 허리를 숙이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제1위원장은 리을설이 사망한 이튿날인 8일에는 인민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전 부대에 국장기간 조기를 게양할 것과 일체의 가무와 유희, 오락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김 제1위원장이 리을설의 장례를 최고 수준에서 치른 것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이자 군 원로인 리을설을 극진히 예우함으로써 김정은의 정통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원로들의 인심을 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함경북도 청진시 빈농에서 태어난 리을설을 북한의 대표적인 혁명 1세대였다.


(출처: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