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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휴가에 관훈클럽이 매년 시행하는 해외 한인 유적지 답사단에 참여해 김정일이 태어난 소련군 88국제여단의 장교 숙소에 가봤다. 김일성은 러시아 연해주의 88국제여단에서 1940∼45 5년간 장교로 복무할 때 첫 부인 김정숙과의 사이에서 김정일을 낳았다.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 중국 지리에 밝고 빨치산 경험이 있는 중국인과 조선인으로 88국제여단을 조직했다. 88여단의 부대원들은 만주를 점령한 일본에 밀려난 동북항일연군 소속이었다. 이 부대의 지휘관이었던 중국인 저우바오중(周保中)은 여느 중국인들처럼 8자를 좋아했고, 부대 안에서 유일한 신생아인 김정일이 라즈돌리네 마을길 88번지에서 태어난 것을 축복하는 뜻에서 88여단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소련군 병영에서 자랄 때 김정일의 이름은 유라였다. 한국의 정보당국은 1993년 아나톨리 李(러시아명)의 도움을 받아 김정숙(김정일의 어머니)의 출산을 도운 조산원 엘냐를 찾아냈다. 아나톨리 이는 국내 대학을 나온 뒤 러시아 하바롭스크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그는 필자와의 통화에서정보요원 두 명과 함께 당시 68세였던 엘냐를 만나 증언을 녹취했다고 말했다. 엘냐는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41년 열일곱 살이었던 엘냐가 조산원 면허를 취득하고 세 번째 받은 아기가 김정일이었다. 엘냐는 그해 2 16일 새벽 4km 눈길을 걸어 아기를 받으러 갔다. 김애순이라는 통신병이 옆에서 거들었다. 김일성이 엘냐에게 아기 엄마가 짠 털목도리를 선물로 주었다. 엘냐는 김일성에 대해내가 반할 정도로 잘생긴 미남이었다 52년 전 일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관훈클럽 답사단이 찾아갔을 때 빨간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의 다른 방들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김정일이 태어난 방은 문이 잠겨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았다. 건물 모퉁이에는 ‘88’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지금도 세계 각지의 북한 연구자들이 이 낡은 집을 찾아온다고 했다. 재미교포가 사서 박물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북한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유라가 태어난 지 넉 달 만인 1941 6 88여단의 김일성 부대는 하바롭스크 동북쪽 아무르 강의 강변도시 뱌츠코예로 주둔지를 옮겼다. 엘냐가 수석조산원 연수차 하바롭스크에 머물 때 73km 떨어진 뱌츠코예로 가서 김정숙 모자를 3년 만에 상봉했다. 엘냐는 유라를 받을 때 조산원 경험이 부족해 탯줄을 길게 잘랐는데 3년 후에 만난 유라의 배꼽이 고추처럼 튀어나와 김정숙과 같이 웃었다고 한다.

 

유라는 마당에서 통신병 김애순이 낳은 한 살 아래 남자아이와 놀고 있었다. 엘냐는김애순 아들의 얼굴에서 김일성을 닮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 아이는 훗날 최용건(88여단 대위·1948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에게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뱌츠코예의 88여단 주둔지는 현재 도로 공사로 당시 건물과 숲들이 모두 사라지고 표지판만 남아 있다.

 

김일성은 자신의 뒤를 이어주체의 나라북한을 통치할 아들이 소련군의 병영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민족의 신화가 서려 있는 백두산의 밀영을 끌어다 댔다. 황장엽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백두산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그럴듯한 곳을 찾아내 김정일이 태어난 밀영이라고 지적하고 뒷산을정일봉이라고 명명했다. 김정일이 러시아에서 태어나유라라는 이름으로 유년기를 보낸 것은 88여단의 항일 빨치산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거짓 설화를 창작한 것이다.

 

김정일은 2001 8 17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러 갈 때 하바롭스크에서 내려 아무르 강이 보이는 전망대를 방문했다. 북한은 작년 그곳에 김정일 위원장 방문 기념 표지판을 세웠다. 김정일로선 아버지의 뻔한 거짓말을 뒤집을 순 없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는 하바롭스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즈돌리네 마을의 빨간 벽돌집에서 가까운 곳에 스탈린이 1937년 극동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던 열차가 출발했던 기차역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외 한인과 한국의 현대사가 서려 있는 장소를 보존하는 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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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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