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지옥'이라 불리는 북한의 전거리 교화소의 참상을 담은 '살려주세요- 반 인륜 범죄의 현장 북한 교화소 전거리 교화소 편'(김상헌 김희태 저, 북한인권 제3의 길 간)이 출간될 예정이다.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은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됐다가 한국에 온 탈북자 81명 중 11명의 증언과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수집한 문헌 자료, 6000여 탈북자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이번 책을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전거리 교화소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청진 방향으로 12㎞ 올라간 산속에 있다. 북한은 전거리 교화소, 요덕 수용소 같은 각종 수용소의 위치를 공개하거나 지도에 표시하지 않는다. 전거리 교화소는 수감자의 80%가 탈북했다가 강제 북송으로 끌려온 북한 주민이며 각종 고문과 학대로 악명 높은 곳이다.

 

탈북자가 아닌 전거리 교화소 수감자들은 외국 방송이나 외국 노래를 부르거나, 북한 체제에 반하는 사소한 말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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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와 학대가 일상인 최악의 인권유린 장소-전거리 교화소

 

전거리 교화소 수감자들은 한 끼 300그램 미만에 훨씬 못 미치는 식량을 받으면서 벌목, 광산 작업 같은 고강도의 노동에 동원된다. 요구 받은 작업량에 비해 제공된 음식이 적은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수감자들은 뱀, 지렁이, , 곤충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옷이 없어서 시체의 옷을 가져가 입기도 한다.

 

25세 같은 나이의 회령 출신 남성 수감자 두 명은 팬티만 입은 상태로 함경도 혹한 겨울 날씨 속에 팬티만 입은 상태로 아침부터 온종일 무릎 꿇어앉아있는 벌을 받다가 결국 동사했다.

 

탈북자는 "두 젊은이가 일어서거나 움직이면 실내에서 지켜보는 보안요원이 달려나가 발길질을 했다" "죄목은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담배꽁초를 주웠거나 음식을 훔친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거리 교화소에선 담배꽁초를 줍거나 다른 죄수와 얘기만 해도 발로 채이거나 삽 등으로 구타를 당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벌어진다.

 

처벌 중에는 앉지도 일어나지도 않는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두 팔을 뒤로 묶어두는 것도 있다. 이런 자세에서 시간이 지나면 어지러워 구토가 난다. 식사 과정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번 하고 먹도록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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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 높이의 담을 쌓다가 부실 공사로 담이 무너져 10여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거리 교화소 간부들은 수감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며 작업을 했던 수감자들을 본보기로 나무말뚝에 일주일간 묶어 놓기도 했다.

 

도주하다 붙잡히면 밧줄로 목을 매 트럭에 달고 개처럼 마당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죽이기도 한다. 다른 수감자가 심한 매를 맞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는 죄목으로 두들겨 맞은 여자 수감자도 있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가 다시 북으로 끌려 온 탈북 여성들이 강제로 낙태 당하는 곳도 전거리 교화소이다. 한 탈북자는 "전거리 교화소 간부들이 중국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수감자를 다시는 임신을 못하게 하겠다며 불로 자궁을 지지기도 했다" "또한 교화소 간부들은 여성 수감자에게 성적 행위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자궁과 유방을 라이터불로 지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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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거리 교화수 수감자의 80%가 사망한다는 증언가족들도 면회하러 와서야 사망 사실을 알아

 

전거리 교화소 수감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지내다 보니 사망률도 높다. 전거리 교화소 수감자였던 탈북자들은 "40명이 같이 입소했는데 3년 후 퇴소할 때 생존자는 5명도 안 됐다", "50명이 감방에 있었는데 29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전거리 교화소에서 시체처리 업무를 담당했던 탈북자는 "1998 630일부터 1999 119일 사이인 6개월간 매립한 시체의 수는 정확히 859구였다" "하루 평균 4~5명의 수감자가 사망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작업장에서 공개처형 방식으로 사망한 수감자의 시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며칠씩 방치해 시체를 보면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사망자가 너무 많아 인근의 불망산 산속에 소각장을 따로 만들어 시체를 소각하기도 했다. 1998년 수감자는 "자동차로 시체를 소각장까지 운반했다"고 증언했고, 2010년 석방된 수감자는 "당시엔 자동차가 아니라 벌목 운반용 큰 수레를 20여명의 수감자가 한 시간 정도 끌어 옮기고, 마지막에는 어깨에 멘 채 소각장까지 시체를 운반했다"고 말했다. 수감자가 끝없이 죽어나가지만, 가족에게 사망통지서를 보내는 일은 없다.

 

김상헌 이사장은 "이번에 출간된 책을 유엔에 제출해 북한 인권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겠다" "북한 당국은 전거리 교화소를 비롯한 각종 수용소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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