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한국에 뿌리 내리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 이 글은 6 28일 열린 학술회의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아 한 토론입니다. 탈북자들이 정착하지 못한다고 말이 많은데, 사실 왜 정착하지 못하는지 그 진단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긴 이건 학자님들이 당사자로 직접 당해보지 않았으면 알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당사자로 겪었고 생각하는 진단을 한번 해봤습니다. 마지막 쯤에 저소득층 비하 발언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우리의 냉정한 현실입니다. 그걸 인정 안하곤 대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탈북자 정착은 어떤 정책도, 대통령도 시켜줄 수 없습니다. 탈북자들의 마음가짐, 한국 사회의 배타성 이것은 외부에서 치유할 수 있는 것도, 몇 년 안에 고쳐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북한이탈주민 정책은 사실 우리의 생각만큼 그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긴 글이지만 한번 읽어보시면 탈북자 정착에 대한 생각과 견해에 도움이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우선 ‘2013년 북한이탈주민학회 공동학술회의기조연설자로 초청해주신 박윤숙 학회장님과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북한이탈주민지원정책 관계자 분들,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정착해 탈북자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기여한 탈북 동포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

 

  저는 오늘 이 자리에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 또 한국 사회에서 기자로 11년간 살면서 관찰자의 입장에서 탈북자 문제를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2002 3월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탈북자 숫자는 2200명 정도 됐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4 7월 태국에서 탈북자들이 전세기를 타고 468명이나 한꺼번에 입국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기억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참 감개무량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한국으로 오는 길이 꽉 막혀 정말 엄청난 고생을 했었는데, 2003년과 2004년 입국자 숫자가 급속히 늘다가 급기야 한꺼번에 그처럼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됐으니 말입니다.

  그걸 보면서 데스크가지금 저들이 버스를 타고 오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써보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것을 썼습니다. 길게 고심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내가 걸어온 길이 저들이 걸어올 길이었으니 말입니다. 한 시간 남짓이니 글이 완성됐습니다.

 

  아래는 그때 썼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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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는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낯선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을 것이고, 누구는 무더운 동남아의 안가에서 수백 번은 그려 보았을 남한 생활을 되새기며 각오를 다졌으리라. 27, 28일 이틀에 걸쳐 입국한 468명의 탈북자들이 버스에 올라 임시 수용시설로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자의 마음은 누구보다 착잡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앞날에 대한 희망이 차례차례 무너져 곧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그런 아픔을 수없이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들은 아는지…. 가방 2개를 달랑 들고 먼지가 뽀얀 11평 임대주택에 첫 짐을 푼 그 밤, 고향이 그리워 눈물로 베개를 적시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저들은 아는지….

 

  2년 전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던 기자 역시 그랬다. 홍수로 범람한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던 결행의 순간도 있었고, 공안에 체포돼 중국과 북한의 감옥을 6곳이나 옮겨 다니기도 했지만 한국에서의 첫날 밤만큼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다. 화려한 불빛이 명멸하는 밤거리를 바라보며 새 삶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던 그날 밤을.

 

  그러나 두 달 뒤 8월의 땡볕으로 달아오른 컨테이너 속을 들락거리며 포도주 박스를 나르는 삯일꾼으로 정착의 첫발을 떼야 했다. 이어진 물품 배달, 카드 홍보, 옷 선별 작업…. ‘면접시 대학졸업증을 가져와야 한다는 직원모집 광고를 보고 김일성대학 졸업증을 갖고 갔더니북한 실력이 통하겠어요라며 쳐다보던 인사담당자의 눈빛도 잊을 수 없다.

 

  아프리카의 미개인을 바라보는 듯한동포들의 눈길 앞에서 스스로를 태연히 가다듬어야 했고, 밤이면 그리움 속에 뒹굴다가 아침이면 또 출근해 웃으며 지내야 했다. 가슴속에 어떤 아픔을 품었든, 어떤 청운의 꿈을 가지고 왔든 간에정착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표현되는 생존의 문제가 무엇보다 절박했다. 탈북 인생의 출발점은 너나없이 꼭 같다고 생각한다.

 

  한 달 동안 밤새껏 이야기해도 끝없이 새로운 얘기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거는 소용없다. 그동안 기자는 탈북자 수용시설인 하나원을 나온 지 3일 만에 일을 시작하는 30대 탈북 여성도, 1년 반이 지나도록 직업 한 번 가져보지 않고 미국 이민을 꿈꾸는 탈북 남성도 보았다. 힘들게 번 돈으로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봉사하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는 탈북자도, 승용차를 훔쳐 팔다 감옥에 간 탈북자도 보았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북한에서 온 많은 이들은 북한 영화열네번째 겨울에 나오는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나와 그는 인생의 첫 시작은 같았건만 어찌하여 지금은 이리도 멀리 있는 것인가.”

 

  꿈 없이 온 사람은 없다. 이제 시작은 같다. 쓰라린 아픔을 안고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 형제들이 이 땅에서 성실한 노력의 땀방울로 무사히 정착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9년말에 동아일보에서 그들 468명을 다시 추적해봤습니다. 3개월 동안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말입니다.

 

 

  468명 중 233명이나 연락해 현황을 취재했다. 기자로써 하는 말이지만 일반인도 아니고, 인터뷰를 꺼리는 탈북자를 200명 넘게 인터뷰 일일이 다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노고의 산물이다.

 

  제가 2004년에 기사를 쓸 땐 정말 진심으로 썼습니다.   쓰라린 아픔을 안고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 형제들이 이 땅에서 성실한 노력의 땀방울로 무사히 정착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반적인 탈북자들의 삶 그대로였습니다.

  233명 중에 200명을 추려내 취재해보니, 1년 이상 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33명에 불과했습니다. 기구당 월평균 소득은 14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참고로 남한의 당시 가구당 소득은 3298900원이니 절반도 안 되는 것입니다. 5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30%는 직업이 없는 무직이었고, 자발적 무직자도 많았습니다.

 

  200명 중에 해외에 나가 사는 사람들이 20명이었습니다. 이건 의미 있는 수치입니다. 지금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25000명이라고 하는데, 10% 2500명은 현재 남한에 없다는 추정을 가능케 합니다. 정부는 이런 사정을 어느 정도나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한 가구당 평균 소득의 절반도 못 벌면서 이들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4점이 나왔습니다. 정말 꽤 높은 수치입니다. 10점 만점도 38명입니다. 아마 남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하면 한 5점이나 나올 까요….

 

  이들 200명 중에 5년 동안 살면서 재산 5000만 원 이상 만든 사람은 15명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대다수가 여전히 빈곤층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의 빈곤층으로 살면서도 행복하답니다. 그들이 살았던 북한의 삶이 얼마나 처절했을까요.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위에 인용된 칼럼을 썼을 때는 저도 남한에 온지 2년 밖에 안됐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아마성실한 노력의 땀방울을 강조했을지 모릅니다.

 

  지금 저는 남한에 정착한지 11년이 됐습니다. 이제 같은 글을 쓰라고 하면성실한 노력의 땀방울같은 말을 썼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해줘야 한다면 이 말밖에 쓸 말이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지금 저는 많은 탈북자들에겐성실한 노력의 땀방울이 거둘 수 있는 열매에는 한계가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입국 2년차 탈북자였던 그때, 새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에게 해줄 말은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저는 새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점점 모르겠습니다. 이제 몇 년이 또 지나면 나는 정말 해줄 말이 전혀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남한에서 사는 사람들이 탈북자들을 보고 남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장황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오히려 저들이 당신에게 해줄 말이 더 많을 것이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새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정착은 결국 몸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입이나 손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쓰는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쓸지도 저들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정착이란 긴 과정에서 많은 탈북자들의 삶은 엇갈립니다.  한국에 와서 잘 정착해 소위정착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성공이란 단어가 참 애매한 단어입니다.

 

  어떻게 살면 성공일까요. 언론에 보면 성공한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의 항상 그 인물에 그 인물입니다. 발굴돼 나오는 인물들보다는 이전부터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 또 나오고 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공한 탈북자 사례는 만들어야 하니까 언론들은 열심히 검색해서 이름 좀 있는 탈북자를 찾아서 인터뷰 만들어내느라 애를 쓰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유명세=성공이라는 공식엔 절대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만해도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지다 보니 사방에서지금 한국에 와서 성공한 탈북자들을 취재하는데 좀 나와 말씀해 주세요라거나 또는탈북자 대상으로 무슨 행사를 하려 하는데 여기 나와서 좀 이야기해주십시오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런 요청은 거절합니다. 왜냐면 저는 다른 탈북자들에 비해 적어도 세 가지 프리미엄은 갖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학벌과 20대에 왔다는 장점, 그리고 빨리 왔다는 점 등이 이런 프리미엄인데, 만약 최근에 왔다거나 입국 당시 나이가 40대였다면 지금 저도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지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남한에서 이러저런 유명세를 타는 탈북자 중에선 따져 보면 위에서 언급한 프리미엄이 최소한 한두 가지는 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탈북자들의 본보기가 될 순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언론에서 만들어 씌우는탈북자 성공이란 굴레가 잘못된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성공한 탈북자라는 단어에서성공의 개념은 생각하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탈북 자체를 성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에서 굶어죽지 않고 남한에 와서 밥은 걱정 없이 먹고 사니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자체가 북에 비해선 성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탈북자 대다수가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 생계급여에서 졸업해 자력으로 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사람도 어찌 보면 성공한 탈북자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봤자 3D 업종에서 월급 100여만 원을 받는 사람을 남한의 기준을 갖다 재보면 절대 성공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탈북자 2500명 시대.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의 객관적 기준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탈북자들은 통일된 이후 남과 북을 아우르는 경험을 가진 훌륭한 인적 자산이 될 것이라는 말도 솔직히 잘 믿지 않습니다. 탈북자인 저 자신도 진짜 그렇게 될지 회의감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도 하층민으로 사는 사람들이 북에 돌아가서 어떤 큰일을 할 수 있을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에서 체험한 좋은 경험을 나눠주는 전도사가 될 지, 아니면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한국에 와서 3D 업종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 다시 중국에 돌아간 조선족들을 두고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체험하고 한국과 중국을 잇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할 사람들이라고 선뜻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연변의 반한 감정은 중국 어느 지방보다 높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탈북자 정착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탈북자 25000명은 현실입니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도 없고, 잊고 지내려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입국자 숫자는 점점 늘어납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으로 방치해 둘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선 무슨 정책도 많이 만들고, 예산도 엄청 투자하는데, 과연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탈북자 이미지는 과거보다 훨씬 더 나빠졌고, 생활수준도 그리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원인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탈북자가 제대로 정착 못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지원이 잘못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흔히 언론과 학계에서 탈북자 정착 지원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먼저 제도가 어떠니, 정책이 어떠니 이런 점을 먼저 다룹니다. 그러니 해답도 고용지원센터를 만드니, 취업박람회를 여니, 이런 것에 초점을 둡니다. 자본이 첫째인 사회여서 그런지 예산 더 투입하자 이런 이야기만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가장 일차적 책임은 탈북자 자신에게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정부에서 좋은 약을 떠서 주어도 본인이 안 먹으면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물론 좋은 약이라는 건 비유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각오가 없으면 취업박람회 같은 것을 백 번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실제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탈북자 취업박람회에 가보면 항상 파리만 날리는데도, 탈북자 정착 예산을 써버려야 해서인지 박람회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계속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탈북자 정책의 1순위는 본인들에게 자립할 각오를 심어주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에게 한국이 이만큼 차별이 많은 나라다, 열심히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제대로 인식시켜 주어야 하며, 적은 결과에도 만족하고, 그래도 열심히 뛰면 그냥 주저앉기보단 훨씬 나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개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미션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지요.

 

  둘째는 탈북자 본인의 각오와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인데, 저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풀지 못하면 아무리 탈북자가 각오를 했다고 해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탈북자 간첩이 체포되면 면전에서너도 혹시 간첩 아니냐고 하거나 북한이 도발하면 탈북자 앞에서북한놈들은 몽땅 죽여 버려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멍이 들지 않는 탈북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차별과 멸시하는 시선을 피해, 외국에 나간 사람이 수천 명인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저도 해외에 이주하겠다는 탈북자를 보면 말리지 않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차별이 있겠지만 그래도 탈북자나 북한놈 소리를 듣지 않는 곳에서 행복하라고 말입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배타성, 특히 북한에 대한 감정엔 적개심조차 포함돼 있는데 이것을 분단 현실에서 갑자기 치유할 수 있는 묘안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대통령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흔히 한국에서 통일을 이야기할 때 통일비용 문제가 가장 먼저 튀어나옵니다. 자본주의적 사고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이 통일을 할 때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품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할 때도 억만금의 예산이나 어떤 제도나 정책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품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형성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민감한 이야기겠지만 제 사례를 하나 들면 저는 한국 사회에 처음 정착했을 때 안양의 한 영구 임대아파트 동네에 정착했습니다.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그런지 아파트 앞에 주차돼 있는 차도 티코를 포함해 안양의 가장 한심한 차들을 다 가져다 모아놓은 것과 같은 동네입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드나들면서 저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관찰했는데, 그 안 좋은 차들 성성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 날카로운 것으로 차를 긁어놓은 흔적들이 사방에서 보였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화풀이를 하나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동네에 어느 날 탈북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강남의 어느 고학력자들이 모인 곳에 가면 설령 그중에 탈북자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도 대놓고 멸시하지 않습니다. 겉에선 신사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사는 동네, 탈북자들이 일하는 가장 근무환경이 척박한 공장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예 대놓고 무시해버립니다. 무시만 당하던 사람들 중에서 새롭게 나타난 탈북자를 무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에서 실례든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나자 탈북여성을 노려보며북한놈들은 다 죽여 버려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 사회의 저소득, 저학력 계층을 제가 모욕하는 것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점잖은 사람은 이런 이야기 안하겠죠.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냉정하게 사실을 말합니다.

  언론에서 한국 사회에 탈북자들을 품자고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난 안 그런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주변엔 탈북자가 없습니다.

 

  탈북자들은 이 사회에서 저소득 주거지, 저소득 저학력 직장이란 환경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저도 등짐 지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곳엔 탈북자에 대한 엄청난 차별이 존재합니다. “탈북자들이 많이 오니 우리한테 올 세금 저기로 샌다고 직접적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물론 저학력, 저소득층이라고 모두 탈북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집단 평균으로 따지면 무시하는 사람도 훨씬 많습니다.

  사람이란 열 명에게서 격려 받아도 한 두 명에게서 무시당하는 그 무시를 잊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가 힘들다고 외국에 나가는 것도 이런 몇 명에게서 받은 차별과 무시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을 어떻게 바꿉니까. 안됩니다. 어느 대통령도, 어떤 정책도 바꿀 수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탈북자 중에도 마찬가지로 문제도 훨씬 많고, 북한이 가증스럽게 노는 것도 사실입니다. 탈북자들 당신들이 처신을 똑바로 하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탈북자는 영원히 이방인이 됩니다.

 

  오늘 탈북자를 품지 못하면 북한 주민도 절대 품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안을 수 없으면 통일은 하면 안 됩니다. 한국에 돈이 흘러 넘쳐도 안 됩니다.

 

  오늘 탈북자들이 받는 차별을 내일 북한 주민들이 받을 것입니다. 소수이며 무조건 이 사회에 동화돼야 살 수 있는 탈북자들과 달리 북한 주민들은 반발을 할 수 있는 길이 많습니다.

  제가 이런 암울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자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낙관적 결론이 나올 수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는 이 현실을 크게 바꿀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바꿔가자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면 탈북자들을 한국 사회에 모두다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는 식의 장밋빛 꿈은 꾸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절망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위의 두 가지 문제가 핵심이고 난제인데, 우리는 탈북자 문제를 이야기할 때 제도와 정책, 예산의 문제만 자꾸 이야기 하려 합니다. 마치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제도와 정책이 중요해도 이것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탈북자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까진, 본인의 노력이 40% 정도,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주고 보듬는 마음이 40% 정도, 그리고 제도와 정책의 비중은 20% 정도나 된다고 봅니다.

 

  물론 제도와 정책 중에도 불합리한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탈북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정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탈북자가 1년 한 직장에서 일하면 장려금 500만 주고, 2년 일하면 600만 주고 하는 식의 정착금 인센티브 정책을 들고 싶습니다. 물론 탈북자들이 일을 하려 하지 않으니 나온 정책이겠지만, 탈북자 입장이 아닌 전형적인 공급자 위주로 생각해 나온 탁상행정이라 봅니다.

 

  단돈 몇 백만 원 들고 하나원 나와서 브로커에게 입국비 주고 나면 돈이 하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당장 먹고 살려면 무작정 취업해야 합니다. 한국에 무슨 직업이 있는지도 모르고, 정말 갓난아기와 다를 바 없는데, 그럴 때 취직하면 무슨 좋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대다수가 정말 열악하고 힘든 일자리를 얻는데, 그런 자리에서 무조건 3년 버텨야 돈을 주겠다니요. 이빨도 안난 아이에게 콩밥 먹어야 돈 준단 말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저도 동아일보 기자가 되기 전까지 3번 직장을 옮겼습니다. 지금 정책 하에서라면 저는 정착금 인센티브를 받지 못했거나 또는 그걸 받았으면 동아일보에 가지 못했겠죠.

 

 정말 초기에 어려운 상황에 놓인 탈북자에겐 한 푼이 아쉬운데, 게다가 건강도 열악하고 육체적 능력은 최악인 상황인데, 정착금은 말 그대로 그럴 때 정착에 쓰라고 지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착의 악순환에 처음부터 빠지는 겁니다.

 

  제가 통일부 장관이면 이러루한 제도부터 탈북자의 입장에서 점검하겠습니다만, 수많은 연구자들이 세미나와 학술회의 암만 해도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이탈주민학회가 앞장서서 이런 식의 탈북자 정착에 곳곳에 뿌리 내린 가시부터 과감하게 뽑아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아무리 제도와 정책이 잘 다듬어 져도 탈북자 본인의 각오와 노력이 미흡하고,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배타성이 뽑히지 않는 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모인 것도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만들면, 그 변화가 다시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듭니다. 6.25 전쟁 이후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국이 오늘 날의 발전까지 온 것도 주저앉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정착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고, 우리는 오늘날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노력하게 되면 어느 날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 봅니다.

 

 입국 1년 차 탈북자와 입국 10년 차 탈북자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분명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탈북자들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노력을 계속 한다면 이 사회에선 분명 무엇인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탈북자들에겐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겁니다.

 

한국 입국 탈북자의 90% 이상이 최근 10년 안에 입국했습니다. 이들이 성장하기까진 아직 시간과 인내가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탈북자의 정착 부적응 문제가 영원한 현실은 아니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배타성과 차별성도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면서 점차 달라질 겁니다. 그 사례가 다문화가정인데, 과거 수십 년 전과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의 배려심과 관용이 얼마나 커졌습니까. 탈북자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두 요소는 서로 옳은 길로만 간다면 긍정적 시너지 효과가 나오게 됩니다. 정책도 경험이 쌓이면 분명 좋은 방향으로 진화해 바뀔 것입니다.

 

  현실은 막막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변화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옳은 자세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탈북자 문제도 끈기 있게 인내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그 한 걸음 한 걸음 앞장서 걸어가시는 분들입니다. 누구보다 탈북자들에 대한 관용과 인내를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탈북자의 한사람으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어려운 길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갑자기 원고를 준비하느라 허점이 곳곳에 많습니다. 널리 양해 부탁드리며 지금까지 긴 시간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드리며 오늘 발언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